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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쥐의 이름으로

[아울뱃] 박쥐의 이름으로(1/?)

※형아 토마스가 나옵니다. 대학생 브루스는 마법소녀? 비슷한 기작으로 배트맨을 합니다.
※원작 뽀샤뽀샤, 생각 안 하고 글씁니다.(혹시 엉뚱하게 생각 하더라도~ 깜찍하니 이해해줘잉~<<)



형이라는 작자는 미친놈이다.

브루스는 피곤으로 뻑뻑한 눈을 손꿈치로 비비며 어둠이 드리운 제 자취방을 바라본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없어져버린 물건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거나 하물며 이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낮 동안은 줄창 시험과 실습으로 구르다가 밤에는 바깥일로 온 거리를 들쑤시고 다니고 깊은 새벽이 머지않은 시간이 되어서야 간신히 자신의 자취방으로 돌아온 브루스가 마주한 것은 처음 방을 구하기 위해 왔을 때 보았던 기본 가구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는 그 광경이었다. 낡은 소파 앞 낮은 테이블 위에 리포트 작성을 위해 여명이 떠오를 때까지 끄지 못하고 있던 노트북도, 피곤함을 못 이겨 세탁바구니 안에 모으지 못하고 이곳저곳에 벗어놓았던 옷가지도, 목욕시간에 벗이 되어주던 도미노를 쓴 익살맞은 고무오리들도 그 무엇도 브루스의 공간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브루스는 목구멍 끝 혀뿌리 가까운 쪽에까지 욕이 치솟았지만 그것을 내뱉을 기력이 없어서 후우 하고 길게 무거운 숨만 내리깔았다. 그리고 지금이 야심한 시각이고 자시고 이 일의 원흉임이 틀림없을 치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신호음이 짧게 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휴대전화 너머로 상대방이 답했다.

 

“무슨 일이지?”

 

아무리 친밀한 사이일지라도 엔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반갑게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받은 인물의 목소리는 편안하다 못해 온화하다고도 할 수 있을 법했다. 마치 이 고담의 너른 먹구름 아래 부끄러움 한 점 없다는 듯이. 그 평탄한 어조에 브루스는 큰 날숨 한 번으로 훅 불어버렸던 분노가 불꽃이 튀듯이 다시금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무슨 일?!”

 

브루스는 그런 제 분노를 참지 않고 소리로써 빽 질러버린다. 지금쯤 휴대전화 너머에서 살짝 눈썹 하나를 찡그린 채 가정교육 덜 된 아이의 행태를 지켜보는 가정교사 같은 한심함과 긍휼함이 적절히 어우러진 표정으로 있을 토마스 웨인 주니어의 작태가 브루스의 머릿속에는 금방이라도 재생될 영상마냥 생생했다. 자신과 고작 3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제 손위 형제는 이따금 그 간격이 마치 한 생에 맞먹는 양 굴고는 했고 브루스는 제 상상(내지는 확신)에 더불어 지금 이 상황에 속이 터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 집에 잘 있던 짐들을 먼지 한 톨까지도 처분해버린 게 누구인데 그걸 모르는 척 무슨 일이라 칭하며 뻔뻔하게 구는 것이 여간 꼭지가 도는 것이 아니었다. 흐릿하게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지만 그 따위 것을 신경쓸 여유도 없이 브루스는 피곤과 신경질을 담아 외쳤다.

 

“이게 무슨 개수작이야!!”

“말씨.”

“아, 젠장. 집어치워! 지금 네가 나한테 잔소리할 계제야?!”

 

곧 죽어도 반듯하고 깔끔하게 뒈지는 것이 모토인 것 같은 토마스가 브루스의 말씨를 지적하자 신경 안 쓰는 척 하면서도 언어의 수위를 조절한 브루스가 다시 버럭 외쳤다.

 

“내 짐들 어쨌어?!”

“저런, 도둑이 들었나?”

 

그러게 이 도시는 치안이 엉망이라니까. 쯧쯧 혀를 차며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는 토마스의 여상한 말을 들으며 브루스는 제 온몸의 혈관이 수축하는 듯한 착각과 함께 격하게 뒷목을 잡고 싶어졌다. 제 아무리 고담이 미국 내에서 손꼽히게 우중충하고 험악한 도시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돈도 안 되는, 득 안 되는 물건까지 홀랑 하룻밤사이에 없어질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이 도시의 범죄자들은 약고 이기적이었으니까. 그리고 설령 그런 범주 외에 속하는 범죄자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브루스는 그를 모를 수가 없었다. 브루스는 아직도 이 밤의 그림자가 묻어있는 것만 같은 제 머리를 무성의하게 헤집어서 까치집을 만들었다.

 

“고집 그만 부리고 집으로 들어오지 그래.”

 

브루스가 성질을 부리건 말건, 빈 방의 저 끝과 이 끝을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며 발을 구르건 아랑곳없이 토마스가 말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피붙이라고는 서로밖에 없는 형제였지만 브루스는 도대체 토마스가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웨인 저택에 묶어놓고 싶어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마음씨 여린 형의 조금 엇나간 과보호라고도 할지 모르겠지만 딱히 잘라 말할 수 없어도 브루스는 그런 것과 토마스의 기행은 어딘가 결이 다르다고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다.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브루스는 납득 없이 고분고분하게 제 형의 막무가내를 들어줄 수 없었다. 그래도 이전에 처음 자취를 시도했을 때 브루스가 기껏 잡았던 보금자리의 계약을 멋대로 해지해버렸을 때는(보증금까지도 깔끔하게 증발해 버렸다. 어떻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이었는데!) 잔뜩 골이 난 브루스가 집에 가기는커녕 카데바들과 밤을 지새우거나, 강의실 한켠에 둥지 트는 일을 일삼고 나아가 길바닥 노숙까지도 불사해버린 덕에 신문에 그 브루스 ‘웨인’의 기행이 소소하게나마 조롱거리로 씹히기 시작했고 토마스는 잘 닦인 구두코와 같던 체면이 상했는지 이제 그 정도까지는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브루스는 이런 것에 진전을 느끼는 제 스스로에게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통학이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사서 고생하지? 지금 운전기사가 못 믿음직하면 다시 페니워스라도 불러줘?”

 

기어이 이제는 제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가 퇴직금을 쓰며 고즈넉하게 제 삶을 살고 있을 옛 집사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말았다. 브루스는 주먹으로 제 이마를 꽁꽁 찧었다. 애초에 말이 안 통할 줄을 알았으면서 분통이라도 터뜨리겠답시고 전화를 건 자신의 안일함이 이렇게나 한심할 수가 없었다.

 

“됐고. 다시 한 번 이랬다간 웨인형제가 고담시경에서 만나는 걸로 기사가 나갈테니 그렇게 알아!”

 

브루스는 토마스가 그러마든 말도 안 되는 소리든 뭐든 토를 달기 전에 서둘러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고 바닥의 카펫 위로 던져버렸다. 안 그래도 밤 산책을 하면서 얻은 타박상이나 뒤집어쓴 이물질들이 불쾌하기 그지없었는데 토마스와 실랑이까지 벌이니 온몸에 진이 쭉 빠졌다. 브루스는 제가 휴대전화를 던져놓은 카펫 위로 드러누워버렸다. 어차피 청결을 따지기에 지금 브루스의 몸은 충분히 더러웠으니 상관없었다.

 

[꼴이 말이 아니네~]

 

힐끗 시선을 위로 올리면 어느 동물의 뾰족한 귀를 형상화한 마스크를 뒤집어쓴 옛 설화에 나올법한 픽시 같은 존재가 브루스를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브루스가 짜증스레 손을 내저으면 키득키득 웃으며 그는 브루스의 손을 피해 땅을 가볍게 차고 날아올랐다. 배트마이트는 그렇게 방정맞게 웃어대며 브루스의 머리 위를 배영하듯 날아다녔다. 브루스가 지금의 배트마이트와 키가 엇비슷할, 아니 조금은 클까 했을 적 떨어졌던 동굴에서 만나게 되었던 그는 그때와 비교했을 때 어떤 노화도 변화도 겪지 않은 모습이었다. 브루스는 하루 대여섯 번씩도 긴 가 민 가 하다가도 역시 그가 이 세상의 물리나 생물 법칙을 따르지 않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라고 다시금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수상쩍기도 했고.

 

“나는 마법 같은 거 쓸 수 없어?”

 

좀 전의 육탄전 탓에 아직도 욱신거리는 복부 때문에 인상을 찡그리며 브루스가 툴툴거렸다. 요상하게 생긴 호루라기를 한 번 불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험상궂은 박쥐의 튼튼한 의상을 둘러쓰고 브루스가 지금 가진 근육양의 몇 십 배에 달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가능하면서 정작 손 한 번 튕기면 강도의 몸에 알아서 밧줄이 감긴다거나 땅을 한 번 발로 구르면 저만치 달려가던 마피아가 픽하니 고꾸라진다거나 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불합리했다. 애초에 스무살의 성인 남자가 스스로를 ‘배트맨’ 씩이나 부르면서 쏘다니는 데 그에 걸맞게 뭔가 더 힘이 있으면 좋은 것 아니겠냐는 말이다. 그러면 고담의 범죄 소탕도 더욱 쉬워질 테고 배트마이트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토록 바라는 이 세계의 배트맨이라는 것도 보다 공고한 존재가 될 테고 말이다.

 

[배트맨은 쉽게 살려고 들면 안 돼!]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배트마이트는 마치 제 온 차원의 삶 속에서 이런 모욕을 받은 적은 없다는 듯 잔뜩 눈을 세모꼴로 사납게 만들며 브루스의 콧등을 딱 때린 후 허공 어느 매로 뿅 하니 사라졌다. 콧등이 얼얼하니 아픈 것이 브루스는 오늘도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느끼며 시들시들 안도한다. 그러면서 어째서 자신의 주변에는 이리도 불합리한 고집을 부르는 이만 있는 건지 제 안일한 인간, 생물 관계에 회의감을 가져본다.

한참 바닥 위를 뒤척이던 브루스는 으짜 하고 괴상스러운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지금 상태로는 내일도 강의가 시작하기 아슬아슬한 시간에 눈을 뜰 것이 뻔했고 그렇다면 지금 씻고 잠들어야 그나마 상쾌한 꼴로 햇빛 아래 설 수 있을 테다. 혹시나 하고 항상 지니고 다니는 가방에 세면도구로 바디워셔나 샴푸도 꼼꼼히 구비하고 있었던 게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며 브루스는 무거운 발을 끌고 욕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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