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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EU와 리런치 코믹스 올빼미 법정, 그리고 케이크버스를 어설프게 섞은 세계입니다.
※작년 말, 올해 초 루님과 이 타래(https://twitter.com/RuRhine_sb/status/1079670825555357697)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설정붕괴와 어거지를 주의하세요.
※제목은 자우림의 파애에서 따왔습니다...만 노래와는 크게 관계가 없습니다.☞☜
드드득 하고 테이블에 올려둔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눈가에 느른한 졸음을 묻힌 채 천천히 크림치즈가 발린 구운 베이글을 씹던 브루스는 눈동자만 살짝 굴리다 꾹 하니 미간에 주름을 더욱 깊게 했다. 얼마 없어 꺼진 화면 위에서 재빠르게도 떠오른 메시지 수신처를 확인한 브루스는 휴대전화를 보다 저쯤에 뒤집어 놓으며 다시 베이글 한 귀퉁이를 사납게 뜯어 물었다. 브루스가 하는 양을 옆 눈으로 설게 보며 커피를 홀짝이던 알프레드가 팔랑, 하고 신문 한 장을 넘기며 지나가듯 묻는다.
“‘동생’분이십니까?”
알프레드는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브루스가 삐죽하니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으며 웨인 엔터프라이즈가 새롭게 시작한 지역사회 장학회 소식이나 마피아 간의 세력싸움 한복판에서 길고양이를 구한 배트맨이 한 문장 첨가된 기사를 읽어 내렸다. 그런 알프레드에게 마치 심기 불편한 고양이가 바닥을 꼬리로 내리치듯 브루스의 긴 손가락이 들으라며 툭툭 테이블 위를 느리게 두드렸다. 제 아무리 눈썹 사이에 힘을 주고 입매를 끌어내려보아야 저 얼굴이 응애 하고 울던 시절부터 알아온 알프레드에게는 그저 도련님의 숱한 장면들 중 하나일 뿐이었지만 괜히 저대로 방치해두었다간 한 며칠을 꿍하니 원망서린 눈으로 말없이 보고만 있을 게 뻔해서(그러면서 마주치면 안 그랬노라 시선을 돌릴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알프레드가 반 발짝 정도는 물러서주기로 했다. 브루스와 눈을 마주하며 알프레드는 맹물과 같은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담담한 시선을 얼마쯤인가 불만어린 눈초리로 보고 있다 줄곧 차분할 뿐인 알프레드의 얼굴에 멋쩍어진 브루스가 작게 툴툴댔다. 펄럭하고 크게 신문을 곧게 편 뒤 처음 유리별장에 왔을 때보다도 반듯하게 접어 정돈한 알프레드는 무표정한 얼굴을 그대로 유지한 채 “실례했습니다.”하고 듣기도 정 없이 말했다.
“웨인 주인님께서 그를 그렇게 받아들이신 줄로 제가 착각을 한 모양입니다. 그야 주인님께서는 언제나 관대한 분이셨잖습니까. 필요로 하다면 집도 주시고, 때때로 보살피기도 하시고, 자신의 혈액도 기꺼이 주시는 그런 분이셨죠.”
이 늙은이가 깜빡했지 뭡니까,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을 마치는 알프레드를 브루스는 우물우물 열없이 베이글을 씹으며 바라보다 안경너머에서 저를 직시하는 굳은 시선에 먼저 눈을 떨어트리고 만다. 평소 브루스가 행하는 자선이랑 그리 크게 내용이 다를 것은 없지 않느냐며 항변하려지만 그러기에 슈퍼맨마저 지구에 위협이 될 존재라며 죽이고자 마음먹었었던 브루스에게는 구차하기만 했다. 다만 나이가 들어 뻔뻔함과 고집만이 꾸준히 늘어난 박쥐는 지지 않으려고 덧붙인다.
“적은 보다 가깝게 두는 법이니까요.”
물론 그래봐야 도련님의 거짓말에는 도가 트인 알프레드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흥, 하고 알프레드가 매섭게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브루스는 눈알만 굴리다 남은 베이글을 입속에 구겨 넣었다.
브루스는 자신이 배트맨이 되고자 결심하면서부터 평균을 웃도는 빈도로 세상의 사건이라 불릴만한 것들을 접해왔다고 생각한다. 죽었던 존재를 되살리는 일이나 전설 혹은 신화로만 여겨지던 세계를 눈앞에 하는 일, 지구에 우호적이지 못한 외계인들에 맞서 죽음을 각오하는 일, 그 배트맨이 제일 먼저 ‘협력’을 입에 담는 일 등 별별 사건들이 브루스의 길에는 있어왔다. 그러니 저물어가는 사십대에 이르러 외동으로 살아왔던 브루스 앞에 별안간 자신은 웨인부부의 또 다른 자식이며 브루스 웨인과 그의 부모는 지독한 위선자이자 배신자라 주장하는 이가 등장하는 것쯤 그렇게 황당한 일도 아닐 테다.
“웨인 주인님의 직계비속께서 찾아오시는 일쯤은 있을 수 있겠거니 했는데 말입니다.”
새삼 자신의 가계도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보며 확인을 요구하는 브루스에게 알프레드는 흔한 한숨 대신에 재미없는 농을 건넸다. 딱히 웃음을 요구하지 않는 집사의 말에 브루스는 진심으로 불쾌한 듯 인상을 팍 찡그리며 바로 대꾸했다.
“나 그런 얼간이 아니에요.”
물론 제 도련님을 그런 얼간이로 키운 적 없는 집사는 브루스의 샐쭉한 반응을 보고서는 만족스럽게 그의 머리카락을 정돈해주었었다. 그래, 비록 브루스는 까다롭고 성가신 데다 결점 많은 부잣집 도련님이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엄청 당연한 사실 하나로 집사를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인간인 것이다. 그러니 낮의 일이 끝나고 과거 자신을 속였고, 죽이려 했고, 위험에 빠뜨렸으며, 믿을 수 없는 인간의 스튜디오 아파트에서 저녁을 하게 된 것쯤 나오는 말이야 사나울지언정 관대한 그의 집사는 눈감아 줄 거라고 브루스는 멋대로 생각했다.
“초면도 아닌데 왜 그렇게 뻣뻣해?”
6.5피트가 넘을 것 같은 브루스 이상의 거구를 한 남자는 둥그런 눈을 가진 부엉이가 자수 놓인 앞치마를 메고서 브루스 앞에 설게 익힌 소고기를 가지고 왔다. 반 년 전만 하더라도 자선 행사 등에서 촉망받는 새 시장 후보로 얼굴을 비추었던 남자, 링컨 마치는 넉 달 전 이 고담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올빼미 법정이란 사이비 단체의 수하임이 밝혀졌고, 석 달 전에는 그곳을 벗어나 아캄에 수감되게 되었으며 법정 공방 끝에 우선은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으며 열흘 전에는 탈론의 배신을 응징하기 위해 달려든 법정의 자객들로부터 목숨을 위협받았다. 그런 그를 배트맨은 어쨌거나 구해주었으며 그것을 답례하겠다며 링컨은 끈질기게 브루스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권유했었고 미루고 미루다가 기어코 오늘이 바로 그 시간이 되었다.
링컨은 처음 브루스와 만났을 때만큼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제 접시를 가지고 브루스의 반대편에 앉았다. 둘의 사이에 놓인 하얗게 피어난 자스민이 들어있는 꽃병이 브루스의 머리를 살짝 아프게 했다. 브루스가 아무리 표정을 벅벅 긁든 말든 링컨은 브루스의 잔에 자잘한 기포가 짤랑짤랑 올라오는 스파클링 음료를 부어 그에게 건넸다.
“무알코올이야.”
브루스가 이 시간에 음주를 할 수 없는 사실을 안다며 링컨은 어딘가 우쭐대듯 말한다. 알코올이고 뭐고 간에 브루스의 본능이 지금 당장 여기를 나가는 게 현명하다 아우성이었지만 브루스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서 받아든 잔을 보다 제 쪽으로 가져왔다.
“그런 눈 하지 마.”
긴 잔 속을 부유하는 공기 방울을 하나하나 가늘게 뜬 눈으로 지켜보는 브루스에게 앞치마를 벗으며 링컨이 척 듣기에도 부러인 것이 티 나는 시무룩한 투로 공시랑 댔다. 여전히 곱지 못한 눈초리로 브루스가 그에게 시선을 옮기면 링컨은 이제 아예 눈썹을 팔자로 기울이며 잔뜩 기죽은 개와 같은 얼굴을 한다.
“우리가 비록 그런 일들을 겪었지만 나도 감사 정도는 할 줄 알아. 그리고 이젠 정말 달라질 거라고. 내가 괜히 ‘링컨 마치’라고 하고 다니겠어?”
제 자신을 줄곧 토마스 웨인이라고 주장했던 링컨 마치가 그렇게 이야기했다. 링컨이 법정에서 보호관찰 처분으로 참작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법정에 의해 의도치 않게 세뇌되고 의도치 않게 탈론이 되었으며 의도치 않게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음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브루스는 지금 눈앞에 소매를 걷어붙인 흰 와이셔츠에 검은 면바지 차림을 한 그의 모습도, 순한 얼굴로 큰 덩치를 구부린 채 호소하는 그의 말도, 보기에 그럴싸하게 차려진 그의 저녁식사도 무엇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브루스가 믿고 말고는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갱생을 하겠다는 자가 있다면 배트맨은 그를 도와야했고 그로써 고담이 보다 안전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무엇보다 슈퍼맨이 되돌아오고, 저스티스 리그가 점점 궤도에 오르면서 브루스는 보다 나은 자신이 되려고 그래도 나름 노력하는 중이었다. 비록 탈론이 되는 데에는 케이크라는 한 개체를 집요하게 갈구하며 추적하고, 결국에는 사냥하는 포크의 집념과 공격성을 체화하는 과정이 들어 있어 그로부터 기인한 성향 탓에 아직까지 링컨이 그가 집착하는 웨인인 브루스의 혈액을 정기적으로 지급 받아야 공격성이 누그러질 수 있고 얼마 전에는 혈액팩으로 받은 피를 우스터소스 대신에 블러디 메리에 넣은 뒤 브루스에게 선보였을 만큼 링컨은 어딘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 있었지만 어쨌든 그가 나온 덕에 올빼미 법정에는 균열이 생겼고 브루스는 그 균열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했다. 또한 믿을 수 없는 인물은 보다 곁에 두어야 통제하기도 편하고 말이다. 절대 이곳에는 어떤 개인적인 판단은 없다고 브루스는 잘라 생각하며 몰래 독이 없음을 확인해놓고도 미심쩍은 눈으로 부드럽게 잘리는 고기를 포크에 찍었다. 그리고 식사는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곧 있으면 추수감사절이네.”
아파트를 뒤로하려는 브루스를 현관까지 따라 나오며 링컨이 아쉬움을 가득 담아 말했다. 무언가 바라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브루스는 모르는 척 손잡이에 손을 대었고 그 순간 브루스의 등 뒤로 커다란 그림자가 훅 끼쳐왔다. 그리고 셔츠 위로 드러난 목덜미에 단단한 이가 와서 박혔다. 묵직한 고통이 신경을 타고 반짝이었고 그것이 머리에 닿기보다 빠르게 브루스가 링컨의 턱을 뒤통수로 받은 다음 인중을 주먹으로 쳐 날렸다. 자신을 붙잡으려는 듯 뻗어지는 커다란 손아귀를 피하며 브루스는 그의 배후로 돌아가 서서 오금을 걷어 차 그를 바닥에 제압한 뒤 무릎으로 그의 등을 찍어 누르며 소매에 숨기고 있던 냉각제가 든 주사를 핏줄이 도드라지듯 창백한 목덜미에 바짝 대었다.
“미안.”
링컨이 몸에서 힘을 빼며 공격의사가 없음을 표시하며 두 손을 들어보였다.
“미안해. 이젠... 네 피를 마시지 않아도 충동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브루스는 자신의 동생이라 주장하며 나타난 이 남자를 믿지 않는다. 브루스의 기억에도, 알프레드의 보장 속에도 토마스 웨인 주니어는 생존하지 않았으니까. 그에게서 떨어지며 브루스는 말을 짓씹어 뱉었다.
“어떤 수작을 부리던 링컨 마치에서 벗어나는 순간 네놈을 아캄에 처박아둘 테니 그리 알도록.”
쾅, 하고 문을 닫으며 브루스 웨인이 올빼미의 발톱 사이를 빠져나갔다. 바닥에 엎드린 채 토마스는 아직 입에 한가득 물린 듯한 다디단 향취를 혀끝에 음미했다. 침샘을 아프게 자극하며 밀려드는 기꺼운 감각에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치솟자 토마스는 끅끅 거리는 웃음 사이로 그것을 내리누르며 형이 제 등줄기에 남긴 전율을 조금이라도 길게 마냥 만끽한다. 사냥의 자유를 얻은 올빼미는 마치 사랑에 빠진 듯 가슴이 부풀었다.
링컨의 아파트에서 돌아오자마자 고담의 밤에 대비하여 브루스는 서둘러 배트슈트를 입으려고 했지만 동굴로 내려가기보다도 전에 굳게 몸을 세우고 있는 알프레드를 먼저 지나쳐야했다. 브루스는 물린 목덜미에 남아 있을 자국을 들키지 않으려 자세를 잡았지만 어둑하게 내려앉은 알프레드는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결국 브루스는 알프레드의 말없는 눈짓에 이끌려 응접실에 놓인 소파에 얌전히 몸을 앉혀야했다.
“별 거 아니에요. 자국도 얼마 없으면 사라질 거고요.”
브루스는 구차하다 못해 안쓰럽게도 들리는 변명을 해댔지만 멍이 지기 시작한 목에 연고를 바른 뒤 밴드를 덧댄 알프레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프레드의 기분을 살피느라 긴장하고 있는 브루스는 식은땀이 살짝 비어져 나오는지 너무나 향긋한 냄새가 났고 그것이 알프레드를 더욱 예민하게 했다. 지금 입을 열어보아야 알프레드는 분명 브루스에게 날선 소리를 할 것이고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알아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자꾸만 날카롭게 치솟는 마음을 고르기 위해 깊이 심호흡을 하고 싶었지만 알프레드는 비강에 가득 찬 브루스의 향이 조심스러워 그마저 못 하고 그저 애꿎은 연고튜브만 손아귀에 꽉 쥐었다.
알프레드는 포크이다. 이십대에 들어서면서 알프레드의 미각은 둔해졌고 그 공백을 채워줄 후각마저도 도움이 되지 않기 시작하더니 결국 알프레드는 모든 맛을 느끼지 못 하게 되었다. 그저 먹는다는 일차원적인 행위 하나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단편적인 즐거움을 상실한 알프레드는 일상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빛을 잃어가는 것을 보았다. 알프레드는 지금의 결핍과 언젠가의 붕괴를 그저 견디고만 있을 수 없어 군에 입대하게 되었고 생과 사, 선과 악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가로지르며 삶을 향한 고집만을 키워왔다. 그렇게 정말 먼 길을 돌고 돌아서 알프레드는 웨인에게 고용되었다. 알프레드는 세상의 선의를 믿는 웨인부부를 지키는 보디가드가 되었고 그로 얼마 없어 세상에 브루스가 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브루스와 만난 이후 알프레드는 제 결핍을 인지할 새도 없이 품 한가득 안기는 행복의 무게를 소중하게 돌보느라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냈으며 그 소소하지만 결코 한가롭지는 않은 자신의 생활 속에서 꼭 극단의 환경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알프레드가 그가 되고자한 자신으로서 있을 수 있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조금씩 믿게 되었다. 알프레드는 비록 미각을 잃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걸음마를 떼는 브루스를 볼 수 있었고, 작은 손이 얼마나 무르게 자신의 손에 잡히는지 느낄 수 있었으며, 까르르 웃는 아이의 웃음도 문제없이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을 자신은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가 브루스가 걷고, 말을 하고, 장난꾸러기가 되어갈 즈음이었다. 알프레드는 맛을 느끼지 못 했지만 손재주가 좋았고 정해진 레시피를 두고 괜한 모험을 택하지 않을 만큼 신중했어서 꽤 괜찮은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브루스에게 처음으로 마들렌을 구워주었던 그날은 알프레드는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마들렌이 성공하기를 바랐었고, 알프레드가 무얼 하는지 살피러 부엌에 폴짝 뛰어온 브루스는 알프레드가 조심스레 내민 마들렌을 한 입, 두 입 오물오물 먹으며 헤이즐넛 빛 눈동자를 반짝반짝이었던 아주 멋진 날들 중 하루였다. 딱 그때까지는. 정신없이 즐겁게 볼에 가득 담던 브루스는 그 자리에서 마들렌 5개를 집어먹었을 즘에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알프레드를 바라보았다. 뒤늦게 알프레드에게도 먹어보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부끄러워서 브루스는 볼을 붉히며 부랴부랴 자기가 그만 한 입 베어 먹어 버린 마들렌을 알프레드에게 작은 손에 담아 쭈욱 뻗으며 같이 먹자고 종용하였다. 괜찮다고, 브루스 도련님께서 다 드시라고 알프레드는 말했지만 어린 얼굴이 꾸욱 하고 짐짓 엄하게 인상을 쓰며 자기 앞에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가 건네는 빵조각을 쥐어 제 입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알프레드는 그때 십대 이후로 잊어버렸던 ‘맛’을 찰나에 느끼고 말았다. 무척 오랜만에 느낀 그것은 매우 달콤하고, 자기 자신이 완전해지는 착각이 드는 감각이었다.
알프레드는 브루스가 자신의 케이크임을 알게 되자마자 그 길로 짐을 싸들고 웨인저택을, 브루스의 곁을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마사와 토마스가 그런 그를 그들의 가족이라 부르며, 그간 알프레드의 헌신을 보았던 만큼 알프레드를 믿는다며 붙잡았고 무엇보다 알프레드가 떠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브루스가 경기하듯 울부짖다가 그만 실신해버렸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브루스를 보자 알프레드는 브루스에게 큰 문제가 생기거나, 이런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어 그의 장래에 안 좋은 영향이라도 줄까봐 무서웠고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이야말로 브루스에게는 가장 큰 위험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생각 나 침대에 누워 진정하는 아이 곁에 다가가 달래지도 못하는 자신이 저주스러웠다. 브루스가 괜찮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자신의 오만이 아닐까 마저 생각하며 알프레드는 브루스의 방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제 짐 가방을 몇 번이고 노려보았다. 그런 알프레드에게 마사가 조용히 다가왔다.
“우리가 제시했던 조건이 맞지 않아 떠나는 거라면 말리지 않겠지만 우리를, 브루스를 위한다는 이유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주길 바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었잖아, 알프레드. 당신이 지닌 그것이 무엇이건, 그게 당신이 되게 하지 마. 도움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웨인을 이용해도 좋으니까.”
마사가 손을 내밀었다. 알프레드는 그런 게 아니라고, 위험을 선의로 감수하기에 세상은 너무나 연약한 곳이라고 자신이 당신들 곁에 오게 된 것도 그 때문 아니었느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마사의 또렷한 눈동자와 그 곧은 손에서 나오는 의지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아니 실은 누구보다도 알프레드가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고 싶었다. 마사가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온갖 위협과 협박에 노출되면서도 고담의 진취적인 활동가로서 계속 지내는 만큼 알프레드는 그의 믿음이 얼마나 굳은지 보아 왔었고 마사가 그저 가벼운 입발림으로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인질로 이상을 펼치겠는가. 자신이 달라질 수 있다면 그 이유가 브루스를 위해서, 웨인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상 무엇이 어떻게 되건 웨인에서 자신에게 준 믿음을 언제까지고 현실로, 진실로 하고 싶었고 알프레드는 정말로 브루스가 안전하고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알프레드는 웨인부부를 묻은 다음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아이를 돌보면서 알프레드 페니워스가 브루스 웨인의 후견인이자, 집사이며, 최후까지의 방패로써 살아갈 것을 보다 굳게 다짐하게 되었다. 제 굶주림도, 기갈도 브루스보다 소중한 것은 없었으니까. 그 모든 것을 참아내는 것은 알프레드가 두려워했던 것보다도 정말로 별 일이 아니었다. 괴로웠던 것은 그런 브루스가 배트맨이 되고, 제 진짜 자신을 가면 뒤에서 그저 몰아붙이듯 험하게 내던지는 것을 견디고 바라보는 것이었다.
“알프레드?”
계속 아무런 말도 없는 알프레드가 의아했는지 브루스는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부르며 고개를 갸웃하니 기울인다. 목덜미에서 터진 모세혈관에서 나온 피가 피부너머로 슬쩍 비치며 그 향을 은은하게 발하고 있었다. 이런 건 어찌돼도 좋았다. 브루스에게 해가 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것이 설령 알프레드 본인이 된다 해도 브루스의 곁에서 제거해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브루스 스스로가 브루스 그 자신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면 알프레드는 도대체 누구로부터 브루스를 지키고 보호하면 되는가. 브루스 그 자체를 온전히 존중하면서 브루스로부터 브루스를 지키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알프레드는 브루스가 링컨에게 지나치게 마음을 내주고 있음을 브루스가 제 과거를 조금이라도 의심했던 그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링컨 마치는 적과 친구의 경계가 모호한 브루스에게는 너무나 취약한 부분을 지르고 들어오는 존재였다.
“당신의 가족은 마사 웨인, 토마스 웨인, 그리고 당신이 입양하신 어린 도련님 세 사람 뿐입니다.”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브루스에게 그의 가슴에 아로새길 듯 알프레드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브루스는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며 무언으로 탄성이라도 뱉은 듯 입술을 살짝 벌렸다. 하지만 이윽고 언제 그랬냐는 듯 피식 웃으며 어깨를 한 번 익살스레 으쓱하며 자리에서 훌쩍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당신이요.”
알프레드의 어깨를 토닥이며 긴장이 풀렸는지 가볍게 웃은 브루스는 배트케이브로 향해 간다. 보라, 브루스는 자신의 위험을 결코 알지 못 한다. 브루스의 그림자마저 복도 저편에 사라질 즈음 비로소 알프레드는 툭 하고 쓰레기통 안에 잔뜩 찌그러지고 터져버린 튜브를 버리며 한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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