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는 침실의 커다란 창문의 커튼 사이로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태양을 찡그린 눈으로 노려보았다. 지금은 저 하얀 불덩어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속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브루스는 창문을 등진 채 침대 위에서 반라의 몸을 웅크렸다.
벌써 며칠째 목을 죄는 듯한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뉴스와 신문에서는 사람들에게 지나친 선탠이 피부 화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가급적 야외활동을 자제할 것을 권유했다. 또 상대적으로 전력 설비가 낙후된 지구나 빈민가 쪽에서는 정전이나 일사병으로 인한 피해가 빈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비록 배트맨의 활동은 해가 간신히 숨을 죽인 밤을 무대로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잘 달구어진 도시가 뿜어내는 열기란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정없이 돌아가는 에어컨의 실외기가 뿜어내는 먼지 묻은 공기는 유독물질만큼이나 진득하게 호흡을 방해했다. 배트맨의 복장은 그 특수성에서 비롯하여 외부 온도를 막아주기는 했지만 카울 아래로 드러난 입과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 그리고 쉼 없는 움직임으로 벌어지는 몸의 발열로 인해 요 며칠간 가벼운 어지러움과 매스꺼움을 겪어야 했다. 그도 활동 중에는 바쁘게 돌아가는 머리와 예민하게 곤두선 신경에 의해 잊어버리기는 했지만 활동이 끝난 뒤 브루스는 배트모빌에 널브러져서 간신히 욕실로 발걸음을 돌리는 나날이었다. 그러다가 오늘, 기어코 브루스는 탈진하고 말았다.
그나마 브루스 웨인으로서 좋은 점은 그의 재력이 이 넓은 웨인저택을 항시 쾌적한 환경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은 된다는 점과 어느 정도에 있어서는 게으름이 묵인된다는 점이었다. 얼마 전까지 브루스의 몸 상태를 체크하던 알프레드는 한숨을 쉬며 브루스의 침대 머리맡 협탁에 차가운 음료를 내려놓으며 오늘의 일정을 조정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오늘 배트맨 활동에 나가고 싶으시다면 지금은 얌전히 쉬시고 후에 가져올 위에 부드러운 식사를 드시라 이야기하며 조용히 방을 나갔다.
브루스는 기분 좋게 바스락거리는 시트와 베개에 몸을 부비며 그의 유능한 집사의 말에 따라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잠시 동안 등 뒤를 훑고 사라진 뜨거운 바람에 인상을 쓰며 고개만 슬쩍 들어보였다. 너무나도 명백한 누군가가 창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온 것을 알았다.
“...뭐야.”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태양 같은 남자가 자신의 등 뒤에 서있다는 사실에 브루스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런 브루스의 얼굴에는 가감 없이 짜증이 서려있었고 슈퍼맨, 클락은 그런 그의 얼굴에 미안한 듯 어설프게 웃어보였다.
도시가 흡사 불지옥에 시달리고 있는 와중에 지금 이 눈앞의 남자는 아마 더할 나위 없이 최상의 컨디션일 것이다. 그도 그럴게 저 짜증나리만치 눈이 부신 태양은 슈퍼맨에게 있어서는 그의 생명과 힘의 원천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의 ‘집’은 북극에 있으면서... 브루스는 괜히 트집을 잡듯 생각했다.
“괜찮아?”
“...그래 보이나?”
더위라곤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상쾌한 클락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째 목덜미에서부터 땀이 베어나는 느낌이 들어 브루스는 다시 고개를 돌려 몸을 웅크렸다. 알프레드 페니워스라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유능한 집사가 쉬라고 말했으니 그에 충실하게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초대하지도 않은 객을 대접할 의무는 브루스에게 없었다. 있다하더라도 브루스 웨인이 그에 충실할 필요도 없다. 몸에 닿지 않았던 쪽 시트가 차가워서 기분이 좋았다.
“브루스.”
“뭐...?!”
갑자기 목덜미에 와 닿은 냉기에 브루스가 등을 떨었다. 그에 눈을 홉뜨며 클락을 바라보자 마치 진정시키듯 클락의 차가운 손이 브루스의 어깨를 토닥였다. 클락의 손이 차가웠다. 스몰빌의 천진한 태양아래서 자라 그 햇빛을 머금고 세상을 활보하는 슈퍼맨의 손은 언제나 따스했다. 보통은 브루스의 손이 살짝 온도가 낮은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클락의 손은 단순히 브루스의 체온보다 낮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차가웠다.
...그 숨을 이렇게도 쓸 수 있나. 브루스는 새삼 크립토니안의 편리한 구조에 속으로 감탄했다.
“좀 나아?”
브루스는 대답대신 긴 숨을 뱉으며 눈을 감았다. 브루스의 체온으로 클락의 손이 다시 온기를 되찾기 시작할 때쯤이면 클락은 잠시 손을 뗐다가 다시 차가워진 손으로 브루스의 목덜미와 귓불 뒤, 겨드랑이, 팔이 접히는 쪽을 식혀주었다. 그러는 사이 뒤를 돌았던 브루스의 몸이 어느새 클락을 바라보는 자세로 바뀌어 있었다.
“아, 맞다.”
브루스의 이마에 주름이 사라지고 편안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보며 클락이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두 손을 뻗어 브루스의 귓바퀴를 가볍게 감쌌다. 브루스가 의아한듯 눈을 깜빡이며 클락을 바라보자 클락이 맑게 웃었다.
“어릴 때, 아빠가, 이렇게 하면 바다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얘기해줬었어.”
클락이 가볍게 오므린 손과 브루스의 귀 사이에서 고요한 잡음들이 공명하며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스몰빌에서 바다를 보지 못했을 때는 종종 이렇게 해서 바다를 상상했어. 하고, 마치 옛날 동화를 들려주듯 클락이 속삭였다. 그에 아주, 아주 오래전 브루스는 부모님과 바닷가에 놀러갔던 적을 떠올렸다. 그때 어머니가 커다란 소라 껍데기를 브루스에게 쥐어주며 이 안에는 저 바다가 담겨있다고 장난스레 이야기 해주셨던 게 생각났다.
아주 가까이서, 그런데 멀리서 잡음이 마치 잔잔한 파도처럼 귓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브루스는 잠시 클락의 파란 눈을 바라보았다. 짙은 푸른빛. 바다 같이 깊은 눈동자. 브루스는 그 광경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듯 천천히 눈을 감으며 잠이 들었다. 그에 이어 따뜻한 입맞춤이 짧게 떨어진 것을 알았지만 브루스는 불평하지 않았다.
전력에 참가하고 싶었는데 다 쓰고 나니 아무리 생각해도, 주제에서 벗어난거 같아서...ㅠㅠ... 바다도 안가지, 물놀이도 안하지, 수영복도 안입지...흑흑흐규ㅠㅠ
덥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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