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벌쭉 웃으며 클락이 내민 휴대폰 화면에는 움직이는 고양이 사진이 떠올라 있었다. 브루스의 시선이 그에 머무는 것을 보고 조금씩 텀을 두면서 클락은 화면을 문질러 다음, 또 다음, 또 또 다음, 몇몇 장의 사진을 더 보여주었다. 클락의 손이 멈추자 이제 끝인가 싶어 브루스가 얼굴에 이게 뭐? 라는 표정으로 클락을 바라보았다. 클락은 가뜩이나 선명한 푸른 눈을 반짝이며 브루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엽지?" "...고양이라도 키울 생각인가?"
살짝 홍조마저 띈 채 이야기하는 클락에게 브루스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에 클락은 조금 기가 죽었는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웅얼거렸다.
"그건 아니지만... 크립토 같은 동물이 아니면 키우기 무섭고... ...그래도, 귀엽잖아?"
브루스는 말을 흐지부지 얼버무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클락이 힐끔 안경너머로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조금 마음을 넓게 먹기로 했다. 애당초 메트로폴리스에 일이 있어 들린 겸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카페테리아에서 같이 점심을 먹고 있는 것부터 클락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브루스로서는 크게 마음을 쓴 부분이었다.
"브루스는 고양이 어때?" "음..."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브루스는 잠시 눈을 내리깔고 생각하듯 말을 끌었다. 그 와중에 클락은 왜인지 모르게 신이 난 듯한 태도로 이것저것 고양이에 대한 찬양과도 가까운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마치 빵처럼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귀엽다든지, 움직이는 물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대견하다든지, 보통 개에 비해 고양이가 독립적인 성격이라 차갑다고 하지만 자세히 알고 보면 고양이도 애교도 부리고 사랑스럽다든지... 그리고 말하는 중간 중간에 도대체 왜 자신을 힐끔 보며 배시시 웃는지 브루스는 지금 눈앞의 클락의 열정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또 한편 조금 약이 오르기도 했다. 누구는 기껏 오랜만이 얼굴 보자고 연락을 줬더니 한다는 말이 고양이? 조금 열이 오른 탓일까, 브루스는 문득 떠오른 말을 그대로 뱉었다.
"글쎄, 난 그녀는 좀 어렵더군."
실제로도 브루스가 고양이라는 단어에서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날렵한 실루엣을 그리며 채찍을 무기로 고담을 활보하는 캣우먼이었다. 그도 그럴게, 이미 그녀의 이름에 '고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으니 그런 브루스의 연상은 그다지 뜬금없는 것은 아닐 터였다. 다만, 세계의 제일가는 탐정이라 불리며 동시에 고담의 잘나가는 바람둥이로 손꼽히는 브루스가 클락이 캣우먼에 대해 그다지 유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과 연인 사이에 있어 다른 제3자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숙지하고도 남은 일이었다. 즉 뒤틀린 심사로 인해 부러 튀어나온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좀 전까지만 해도 반짝반짝 빛이 나던 클락의 얼굴이 조금 굳어들었다. 클락도 고양이와 캣우먼을 연관 짓는 것에 대해 크게 문제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앞에서 브루스가 그녀의 일을 입에 담는 것이 불만스럽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걸 입 밖으로 바로 내자니 어딘지, 브루스에게는 그저 당연한 사고의 흐름일 뿐인 일에 대해 트집 잡는 것 같아 내키지 않는다. 아마 이쯤일 것이다. 브루스는 지금 클락의 머릿속이 마치 훤히 보이는 듯해 다시 찻잔에 입을 대며 속으로 비죽 웃었다.
"아, 음... 그녀는 사람, 이잖아?"
다시 우물쭈물, 더 놀리면 입이 한 뼘 더 튀어나오겠군. 브루스는 마치 주인의 관심을 빼앗긴 강아지 마냥 움츠러드는 클락의 모습에 그만 풋 하고 웃어버렸다. 어쩌면 그보다 집에 있는 티투스가 더 의젓할지도 모른다. 공공연한 곳에서 이 이상 놀리는 건 조금 가여울지도. 그리고 괜히 화제에 끼어들게 된 캣우먼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어서 브루스는 웃는 얼굴 그대로 클락의 코를 꽉 집었다. 응? 하고 코 막힌 소리가 클락에게서 튀어나왔다.
"난 개가 더 좋아."
멀뚱히 눈을 껌뻑이는 클락의 얼굴을 바라보며 브루스는 깔끔한 동작으로 자신의 몫의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