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어째 난 글을 쓸 때마다 뽀뽀로 끝을 내는구나 싶어서 떠오른 숲뱃.
원작이 기어이 이 둘을 어린시절에 안면있는 사이로 만든 지구가 있으니 나는 그 떡밥을 물기로 했다.
마지막은 언제나 입맞춤이었다.
꽤 오래된 기억을 되짚어 보면 거기에는 따뜻하게 데운 우유 냄새가 묻어나는 입맞춤이 있었다. 소년과 소년이 헤어지던 날 아침에, 잔뜩 아쉬운 얼굴로 소년은 소년의 창백한 뺨에 입을 맞추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소년의 곁에는 늘 집사가 함께 있었지만 그런 식의 남으로부터 받는 애정 어린 제스처는 오랜만이라 소년은 잠시 코끝이 징 해왔다. 하지만 소년은 새침한 얼굴로 손만 팔랑 흔들 뿐이었다.
둘은 그 후로 아주 오랫동안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드물게 짤막한 안부 전화를 날리거나, 더 더 드물게 편지라기보다 엽서에 가까운 몇 문장을 멀리서 주고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 먼 어딘가에 자신의 소식을 귀기울여주고 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놀라울 만큼 가슴이 든든한 일이었다. 클락이 그의 능력을 차차 알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브루스는 장난삼아 먼 그의 저택에서 클락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 그리고 그런 뒤에는 꼭 이 주일을 넘기지 않는 시점에 스몰빌에서부터 간결한 편지가 날아왔다.
어느 날인가, 클락이 너무나도 힘든 하루를 보낸 날이 있었다. 클락이 자랄수록 그는 여타의 동갑내기 아이들보다, 그 어느 건장한 성인보다도 강인해졌다. 그와 대조적으로 순박하기 그지없는 그의 성정은 그의 또래 남자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기 십상이었고 클락은 그들의 괴롭힘을 받을 때마다 괴로운 자신의 심정보다도 실수로 그 아이들을 잘못 다치게 하지는 않을까 먼저 신경 써야 했다. 그런 클락을 그의 부모님은 마치 당신들의 죄인 양 슬픈 얼굴로 보듬어주었지만 본디 사람이란 집단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애정이 제각각 다른 법이었다.
그 날은 클락이 참고, 참고 참다가 실수로 클락보다 덩치가 배는 있는 남자아이를 저 멀리로 밀쳐버린 날이었다. 클락의 힘으로 멀리 멀리 굴러간 아이는 다행히 별 큰 상처를 입지 않았지만 클락은 인간이 그에게 얼마나 연약한 존재일 수 있는가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보통의 '인간'인 남자 아이들은 힘이 세다면 스포츠를 하던 치기 어린 학창시절을 보내던 하면 됐지만 클락의 힘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힘은 그의 옆의 이웃을 다치게 하거나, 심하게는 죽게 할 수도 있는 힘이었다.
클락은 부모님의 조용한 코고는 소리와 숨소리를 확인하며 몰래 방을 나와 지붕 위에 올라앉았다. 벌써 밤이 이렇게나 깊었는데도 클락은 조금도 졸리지 않았다. 그저 멀리 멀리의 별들이 부수어져 내려올 것만 같은 밤하늘을 헤아렸다. 그의 고향은 이미 그 속에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 고향의 잔상은 아직 이 지구에서는 볼 수 있는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어떤 빛인지 클락은 알 수 없었다. 클락은 무릎에 고개를 파묻어보았다. 새까만 시야, 조용한 풀벌레의 울음소리, 바람이 곡식들을 부드럽게 매만지는 소리, 저 멀리에 사는 브라운 씨네 집 개가 잠꼬대하는 소리. 그리고
"클락."
클락은 고개를 반짝 들어 보았다. 사위가 어두운 가운데 클락은 희미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기 또래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캔자스가 아닌 저 먼, 섬으로 된 도시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클락은 마치 바람 소리처럼 스쳐 지나간 자신의 이름이 불어온 방향을 멀거나 바라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와 청량한 밤의 어둠만이 가득한 시야의 끝, 그 어딘가에 브루스가 있을 것이다. 클락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몸이 살짝 공중을 부유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 즈음은 클락과 브루스 사이의 연락이 뜸해지고 있었던 때였다. 물론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새해 같은 날에는 꼬박꼬박 연락이 오갔지만 그 외에 잡다한 수다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클락은 그것을 퍽 섭섭하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조차도 자신의 일에 몸과 마음이 바빠 그 서운함을 잊는 날이 더 많아졌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앳되던 소년의 목소리에서 이제는 중저음의 차분한 음성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브루스의 목소리는 마치 클락이 눈을 뜬 채로 꿈을 꾼 듯 사라져 있었다. 좀 더 귀를 기울이면... 브루스의 목소리를 더 들을 수 있을까? 하지만 클락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저 그의 고막을 울리고 신경을 따라 뇌에 울려 퍼진 자신의 이름을 되새기듯 곱씹었다. 클락, 클락...
"브루스."
아마 곧 잠자리에 들 친구에게 클락은 그가 좋은 꿈을 꾸길 바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클락에게 편안한 수마가 찾아왔다.
둘이 다시 얼굴을 마주하게 된 것은 추운 겨울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가까워지고 있을 때쯤 불현듯 브루스가 찾아왔다. 켄트 가족들은 너무나도 오랜만이 찾아온 그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마사는 브루스에게 몰라보게 훤칠해 졌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브루스는 그에 쑥스럽게 켄트 부부는 변함없이 건강해 보인다고 답했다. 클락은 친구의 방문에 신이나 그의 손을 잡아끌고 오랫동안 스몰빌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다. 브루스는 그에 아무 말 없이 따라주었다. 마치 둘이 소년 시절에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한참 브루스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쏘다니고, 또 그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고, 가만히 서있던 그를 뒤에서 몰래 들어올리기도 하면서 놀다가 클락은 그제야 브루스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쩐 일이야?"
지금까지 아무런 물음 없이 즐겁게 친구의 방문에 응하던 클락의 늦은 질문에 브루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순간 단단한 돌 마냥 굳어진 브루스의 얼굴에 클락도 따라서 몸이 굳고 말았다.
"한동안 멀리 떠날 생각이야."
오랜 침묵 끝에 브루스가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어디로?"
"어디든."
브루스는 이미 깜깜해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클락은 그런 브루스의 옆얼굴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클락은 브루스가 아주 오래전부터 먼, 아주 먼 여행을 준비하고 있노라고 알고 있었다. 브루스가 직접 말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주고받은 몇 마디의 대화와 그의 과거, 그리고 클락이 어렴풋하게나마 알아낸 그의 성정으로 보아 그가 언제까지고 웨인 가문의 상속인으로서만 머물지 않을 것임을 짐작하고는 있었다. 다만 그것이 이렇게 바로 코앞에 닥쳐오자 클락은 뭐라 답할 말을 찾지 못해 입을 다물었다.
"내가 없는 중에도 알프레드로부터 안부 인사 정도는 갈 거야. 아저씨와 아주머니께 걱정을 끼칠 수는 없으니까."
브루스가 자신을 바라보는 클락에게 고개를 돌리며 마치 위로하듯 말했다. 클락은 결국 돌려줄 말을 찾지 못한 채 고개만 주억였다. 그런 클락을 보며 브루스는 피식 웃으며 주먹으로 가볍게 클락의 어깨를 쳤다. 클락은 그런 브루스의 주먹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자신과 다르게 브루스의 손은 시린 겨울바람에 차가워져 있었다. 여전히 어떤 말을 할지 알 수 없어 클락은 그저 브루스의 눈만 바라보았다. 밤이라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지만 클락은 그 곳에 자신의 눈동자보다 옅은 푸른빛이, 마치 맑은 겨울 하늘과 같은 눈동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클락은 그의 귀에 규칙적으로 뛰는 브루스의 느긋한 심장 소리를 들었다.
"돌아오면,"
클락이 천천히 말했다. 클락은 '언제'라는 물음을 입에 담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였다.
"돌아오면, 그 땐 내가 찾아갈게."
그에 브루스는 웃었다. 그런 브루스의 입술 위로 클락은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두 번의 만남과, 두 번의 헤어짐, 그리고 두 번의 입맞춤. 각각의 사건마다 심경은 달랐지만 클락은 아주 소중한 보물을 간직하듯 그 기억을 꼭꼭 담아두었다. 클락의 머릿속에는 이미 브루스만이 가진 그 특유의 생체 리듬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지구에서 찾아내려고 하지 않았다. 헤어진 날 이후로 브루스는 단 한 번도 클락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클락은 찾지 않았다. 아직 브루스는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한 해, 두 해, 세월이 흘렀다.
클락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안경을 고쳐 썼다. 한적한 시골과 다르게 메트로폴리스는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였고 시골과는 다른 에너지가 넘쳐났다. 클락은 데일리 플래닛의 기자로서 그리고 아직 그 이름을 듣는 것은 어색하지만 '슈퍼맨'으로서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클락은 조심조심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렸다. 깜빡이는 커서가 옆으로 움직이면서 그와 같이 단어가, 문장이 줄을 이었다.
클락은 그가 슈퍼맨으로서 활동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고담으로부터 들려오는 풍문을 전해 들었다. 그 풍문은 히어로의 무용담이라기 보단 도시 괴담과도 비슷한 유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클락은 그 흐릿한 소문 한 자락에 주체 없이 떨려오는 가슴을 진정하느라 바빴다. 그가, 돌아왔다. 아니, 정말 돌아온 걸까? 그가 고담에 있었다. 그를 찾아도 될까? 하지만 그는 클락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 않았다. 클락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다시 기사를 마저 쓰기 시작했다.
다시 한 해가 끝나려 하고 있었다. 클락은 크게 피로를 느끼지는 않았지만 습관처럼 옷을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아직까지 브루스에게서 전해져오는 소식은 없었다. 그저 의례적으로 찾아오던 알프레드의 인사말이 전부였다. 클락은 알프레드에게 브루스에 대해서 물을까 생각도 했지만 다시 참았다. 클락은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그래도 눈을 감았다. 새까만 어둠이 펼쳐졌다.
"클락."
클락은 눈을 반짝 떴다. 아주, 아주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클락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기억을 되살려 빠르게 공중을 날았다. 돌아온 그에게로.
오랜만이 듣는 그의 심장소리는 클락이 기억했을 때보다도 더 차분하고 굳세져 있었다. 자세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클락은 브루스가 긴긴 여정을 보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의 심장이 단단해질 때까지 브루스는 클락이 모르는 곳에서 여러 일들을 겪어왔을 것이다. 클락은 멀거니 석상이 있는 건물 위 공중에서 떠있었다. 석상 위에는 클락의 눈에는 낯선 검은 박쥐가, 소문의 다크나이트가 있었다. 클락은 잠시 숨을 멈추었다. 낯선 차림새였지만 그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분명 조금 변했을지언정 브루스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클락을, 검은 실루엣 또한 바라봐왔다. 그의 얼굴은 카울로 가려져 있어 고집스레 다물린 입가가 보이는 게 전부였다.
클락은 그런 그에게 다가가야할지 말아야할지, 인사를 건네야할지, 안부를 물어야할지 몰라 그저 공중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런 클락을 그는 그저 소리 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그러다 마치 단단한 조각이 살아 움직이듯, 그의 굳게 닫힌 입매가 클락이 알고 있는 호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클락의 눈이 크게 뜨였다.
"클락. ...아니, 슈퍼맨, 이 더 적절한가?"
단 두 번. 직접 얼굴을 마주한 것은 고작 단 두 번인 만남 속에서, 클락과 브루스는 언제나 가벼운 입맞춤을 끝으로 헤어졌다.
클락은 드러난 브루스의 입에 키스했다. 이번에는 입맞춤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글 마저도 뽑뽀로 끝났다는게 유머... 무슨 페티시 있나?;;
이 글 쓰기보다 전에 생각했던 것 중에 브루스가 수련의 길(...)을 떠난 도중 특정일에 클락의 이름을 부르거나 아니면 어떤 좌표를 읊으면, 클락이 날아가 거기서 브루스가 한 두 문장 정도로 남긴 엽서와 그가 머물렀던 곳의 자그마한 기념품? 그런 거? 를 두고 가면 클락이 그걸 찾아내는 거. 그리고 브루스가 돌아왔을 때 클락이 받은 건 브루스와의 뽑!뽀! 였다는... 뭐 그런게 있었는데...
망상이라지만 클락과 브루스 쯤 되니 이런 게 가능하네... 비범하다.
여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건 없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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