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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SuperBat(더뱃기반)

[숲뱃] SuperBat Begins

※더배트맨 기반(이지만 매우 빈약한)의 연상숲x연하뱃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몰아붙이다간 죽고 말텐데?”

팔을 타고 어깨근육에 팽팽하게 가해지던 하중이 눈 깜빡할 사이에 없어진다 싶더니 브루스의 머리 위로 점잖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비어버린 손을 한 번 보고 고개를 들면 어두운 밤하늘 속에서도 선명하게 너풀거리는 붉은 망토를 두른 히어로가 배트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큰 소리가 아니었음에도 강한 울림이 있는 음성에 브루스는 눈을 가늘게 했다. 그러면서도 어느 천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듯 한 조각상 같은 얼굴과 이 행성의 중력 따위는 아랑곳없이 부유하는 부츠 끝까지 배트맨의 렌즈 속에 세세하게 기록될 만큼 관찰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저 속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 가늠이 쉬이 되지 않는 밤 짐승을 형상화한 카울을 뒤집어쓴 배트맨은 어딘가 집요해 보일 정도로 잠잠하게 클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에게 특별한 초능력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클락은 그럼에도 마치 그가 엑스선 시야로 사물을 뚫어보듯 배트맨 역시도 그렇게 자신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흠, 하고 짧게 헛기침을 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먼저 얘기 했어야 했군.”

슈퍼맨은 브루스와 눈높이를 맞추며 아까의 엄격하던 얼굴을 보다 부드러운 것으로 바꾸어 그에게 훤히 드러난 맨손을 뻗었다. 그를 믿든 어떻든 ‘히어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상 서로 잘 해보자고 해서 나쁠 것은 없을 테니까.
흔들림 없이 곧게 뻗어져온 강인한 손가락을 보자니 그 끝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선(線)으로 발산되기라도 하는지 알프레드와 머리를 맞대 심혈을 기울여 개량한 건틀렛 안에 있는 손 근육이 미세하게 움찔거리며 식은땀이 비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브루스는 또 한 동안 그 광경을 멀거니 쇼케이스 너머를 바라보는 구경꾼마냥 보고만 있다가 그래플링건의 후크를 저 쯤에 고정시켜 줄을 빠르게 되감아 잡아끌리는 방향을 따라 몸을 던졌다. 핑계로 댈 것을 꼽자면 아직 저 하늘에 떠오른 박쥐의 문양이 저물지 않았다는 것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클락은 어둠이 사라진 자리에 덩그러니 남은 제 손을 머쓱하게 바라보다 몸을 돌려 자신의 도시로 향해갔다.



슈퍼맨이라는 존재를 아주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의 죽음으로 시간이 멈춰있던 브루스에게 옆 도시의 초인적인 히어로란 그리 신경을 잡아끄는 대상이 아니었다. 성년이 되기 전에는 자신을 좀먹어가는 복수심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성년이 된 후에는 어떻게 부모님 부끄럽지 않은 자경단이 될 수 있을지에 전전긍긍하며 고담의 범죄와 싸우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데다 호전적인 외계 종족의 술수였는지 전능한 존재의 농간이었는지 어땠는지의 이유로 차원의 틈바구니로 사라져버린 영웅의 이야기는 갓 배트맨이 되어 제 앞가림에 바빴던 브루스에게는 너무나 큰 존재여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던 탓이었다. 겨우야, 그 많은 시행착오 끝에 진정으로 배트맨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캐릭터가 되어야하는지를 잡아낸 후에도 셀리나가 예견하고 알프레드가 염려했듯 이 커다란 도시는 결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고 브루스는 이따금 자신의 과거에만 몰두하던 풋내기 자경단으로 돌아가 버릴 것 같은 스스로를 다잡으며 눈이 말라 핏줄이 터지도록 모든 것을 지켜보느라 온 밤을 소비하고 있었고 낮에는 낮대로 웨인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꾸려나가야 했으므로 슈퍼맨은 정말이지 멀고도 먼 존재에 불과했다. 그런 브루스 앞에 등장한 슈퍼맨은, 배트맨이 거꾸로 매달아 놓고 심문하던 범죄자를 잡아 고담시경 앞으로 구해낸 ‘히어로’는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거북하면서도 영원히 함께하지 못할 평행선을 보는 것과 같았다. 늘 중력에 이끌려 진창을 구르는 박쥐는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오늘도 땅으로 매몰차게 추락하면서 브루스는 어떻게 굴러야 조금은 더 성할 수 있을지를 고심하며 몸을 웅크리고 있다. 팔코네가 와해된 후 이도저도 못하는 신세가 된 회계사가 혼자서만 망하지는 않겠다며 건물 전체를 폭발시켜버린 탓에 발판을 잃은 브루스는 기폭 장치의 버튼을 손에 꾹 쥔 그를 붙잡고 무너지는 건물의 잔해를 피하며 저 너머의 건물 벽에 그래플링건을 발사해 고정하고 퇴로를 만들려고 했지만 무어에 그렇게 억울하고 화가 나는지 악에 뻗친 그가 브루스의 손등을 잭나이프로 찍어버린 탓에 힘이 풀려 같이 아래로 추락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후에라도 얼마 뒤면 출동할 고든이 증인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그물망을 쳐서 범죄자를 그나마 성하게 남은 구조에 고정해 가두는 데는 성공한 배트맨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 반동으로 더 빠르게 아래로,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눈에 담아둬야 할 텐데도 브루스는 그만 눈을 꼭 감으며 금방 끼쳐올 고통에 대비했다. 유틸리티 벨트에 들어있는 각성제가 충분하기를 바라면서 브루스는 카운트다운을 했다. 셋, 둘... 그리고 하나.
-충격은 없었다. 브루스가 맨몸으로는 느껴보지 못한 생소한 부유감이 들어 눈을 뜨니 S자의 문양이 커다랗게 보였다. 브루스는 또 그 잠깐의 사이에 안전한 곳에 내려졌다. 슈퍼맨이 자신을 보면서 눈을 찌푸린 듯, 혹은 웃는 듯 미묘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그가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전 어디선가 다시 그를 찾는 부름이 들린 건지 곧 브루스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표정은 동정심이었을까, 긍휼함이었을까, 갸륵함이었을까. 브루스는 관찰에는 자신이 있어도 여전히 자기 내부에서 맴도는 감정을 구분하고 매듭짓느라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는 데는 능숙하지 못했지만 검은색에 감춰진 피로 물든 브루스의 손을 본 슈퍼맨의 표정이 왜인지 아픔과 한없이 가깝다는 것만큼은 알아보았다. 저 멀리서 고담시 경찰들이 오고 있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브루스는 짧게 숨을 폭 내쉬었다.



클락은 자신이 딱히 어떤 위대한 존재가 되고자 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숨어만 지내기에는 클락이 가진 힘은 아깝기 그지없는 것이었고 스몰빌의 선량한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다보니 할 수 있다면 기꺼이 이웃을 돕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컸을 뿐이었다. 다만 그저 손을 뻗어 도울 수 있기에 돕는다는 것이 소리를 웃도는 속도로 움직일 수 있고 이 지구상 어떤 무거운 것도 새의 깃털만큼 가뿐하게 들 수 있다 보니 이웃과 도움의 범위가 남들보다 조금 더 컸다는 게 문제였을 것이다. 단순히 어려운 이를 돕고자 했던 일로 인해 시시비비를 위한 청문회가 열릴 때, 우주의 싸움광이 마지막 남은 크립토니안의 숨통을 노릴 때, 신문에서 슈퍼맨의 행적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질 때, 지금처럼 파괴된 고향의 행성 조각이 클락을 갈가리 찢으려 들 때면 클락은 제 스스로가 어쩔 수 없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떨치려야 떨칠 수가 없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우주의 굴곡을 지나 겨우 지구로 돌아왔을 때 어느 날 부터인가 생겨난 또 다른 히어로에게 괜히 무게를 잡고 이야기를 붙였던 건 그런 자신의 신분을 조금은 희석해보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영광되기는 하나 어쩌면 그뿐인 동종업자에게 자기연민을 느껴서 일지도 모르겠고.
갓난아기였던 칼엘을 실은 비행선이 만들어놓은 궤도를 따라 우주의 시간에 비하자면 찰나라 할 수 있는 37년 쯤 되는 간격의 차이로 견인되듯 크립톤의 조각이 지구를 향해 만유인력에 이끌려 점점 가속도가 붙으면서 똑바르게 떨어져 내렸다. 과학자들도 권위자들도 모두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과 큰 위험이 닥쳐오고 있음을 알았지만 결재 하나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관료주의 때문에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탓에도 누구도 신속하게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꽤나 바보 같은 상황이었지만 인류는 가끔 스스로를 파괴하는 어처구니없는 선택을 하고는 한다. 그런 일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클락은 렉스 코프에서 비밀리에 미사일에 맞먹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인류의 구원자가 되고 싶어 하는 루터가 잠잠히 상황을 보고 있기만 한 이유를 알았지만 애써 모르는 척 했다.
슈퍼맨으로서 클락은 납으로 된 슈트를 입고 하늘을 날았다. 구름을 넘어, 수중기의 덩어리를 넘어서 걸러지지 않은 자외선을 한껏 받아 강해진 슈퍼맨의 힘과 맞부딪치는 크립톤 잔해의 속도를 이기지 못한 슈트가 망가지며 클락은 크립토나이트의 방사선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클락이 산산이 부서뜨린 행성의 파편들이 그의 피부를 할퀴고 긁으며 반짝이는 별이 되어 이곳저곳으로 흩어질 때 지구 대기권 그 높은 곳에서 클락은 새삼 이 지구가 자신을 붙드는 힘을 생생히 느낀다. 그것이 아늑하기보다 어딘가 숨이 막히는 것은 이제는 클락이 필시 어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저기 크립토나이트 조각이 박힌 채 곤두박질친 클락의 몸은 검은 바닷물로 던져졌다.

“슈퍼맨!”

모든 소리를 잡아먹는 바닷물과 흐려지는 의식을 헤집으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가 클락은 별안간 폐로 몰려드는 공기에 쿨럭쿨럭 숨을 내쉬며 먹은 물을 울컥 뱉어냈다. 뼈가 으스러진 고통이 닥쳐오며 끙끙대는 슈퍼맨을 바닥에 눕히고 어두운 시야에서 그림자로 뭉뚱그려져 보이는 검은 인영이 소금물이 들어가 따갑기 그지없는 상처부위를 헤집어낼 듯 살피며 훑고 지나가면 분명 아팠는데도 버겁기만 하던 중력이 한층 견딜만한 것이 되었다. 그가 너부러져 있던 곳이 슈퍼맨의 에너지원인 태양빛이 없는 고담의 눅눅한 항구 끝자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배트맨?”

클락이 어물어물 눈을 떴다. 잔뜩 당황한 듯 찌푸려진 배트맨의 카울이 보였다. 아니, 어딘가 미안한 얼굴인 것도 같았다. 곤란한 이를 그냥 그대로 둘 성정이 되지 못하는 클락은 죽다 살아난 중에도 배트맨에게 괜찮다고, 고맙다고 말하려 했다. 그 찰나,

“당신도, 떨어지나?”

어딘가 맹한 배트맨의 물음이 들려왔고 잠시간의 정적 끝에 클락은 아픔도 잊고 웃어버렸다.



“친구를 사귀셨군요?”

선글라스를 끼고서 볕이 드는 창가에 앉아 집사가 건네준 은그릇에 담긴 장과를 한 알 한 알 꺼내어 느릿느릿 먹고 있는 브루스에게 알프레드가 웃음기를 숨기지 않고 말을 걸었다. 잠이 덜 깨서 뚱한 상태인 도련님을 두고 그에게로 전해졌을 우편을 살피려 자리를 잡은 집사가 슬쩍 브루스에게 건넨 신문에는 그 와중에 언제 찍혔던 건지 슈퍼맨과 배트맨이 나란히 서로를 지탱하며 서있는 모습이 사진으로 붙어있었다. 브루스는 짧게 눈을 굴린 뒤 입술을 삐죽 내밀며 입안을 굴러다니는 작은 과일을 조심히 어금니로 씹어 물며 지난 밤 떨어진 ‘별’들이 어디로 흩어졌는지 추적하기 위해 휴대용 PC를 열없이 살펴볼 뿐이었다. 어수룩한 도련님의 얼굴이 발갛게 된 것을 알았지만 알프레드는 기꺼이 그것을 모르는 척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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