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긋난
아이야, 하늘을 보지 마렴.
그곳은 너무 자유로워 그만 마음을 잃곤 한단다.
아이야, 콘크리트 아래 갇힌 땅을 보렴.
숨 한 점 들지 않는 그곳은
아무것도 없어 안전하단다.
빛 한 점 보지 말고,
바람 소리 하나 듣지 마렴.
조용히, 아주 조용히 숨을 쉬렴.
여린 가슴을 지닌 네가 걱정이다.
산다는 건 깊은 뜻이 있는 게 아니란다.
마음도, 영혼도 그저 멋들어진 시구일 뿐이야.
이곳은 네 콩콩 뛰는 심장도,
팔딱이는 허파도,
언제나 바쁜 머리도,
생생한 혈관도,
그 무엇도 마음껏 소리 지를 수 없는 곳이란다.
아이야,
그 날의 슬픔도
그 때의 아픔도
그 시절의 무서움도 전부
오직 너만 가리키며 비웃는다.
아이야,
아이야.
텅 빈 가슴을 가지렴.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야.
사실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했다.
◇
세계는 네모나고 비좁다.
곰팡이가 피었다, 멍처럼.
겉거죽이 두터워서 몸을 웅크리기가 쉽지 않다.
재갈을 물고 비명을 지른다.
지금부터 끽소리라도 냈다간 쫓겨나요.
미안하다고 고개를 수그리면서
저 새끼,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고 속으로 으름장을 놓으면서
잔머리가 돋아난 뒷목을 긁으면
피가 난다.
손톱을 깎는다.
또각또각, 평온하게
우주가 멸망하는 것을 생각한다.
네모나고 비좁은 세계가
잠이 든다.
◇ 씀-구름 사이로
구름 사이로 토끼가 도망을 갔다.
늦었어! 늦었어!
중요한 약속에 늦었어!
토끼는 햇빛을 공중에 남기고 구름 너머로 사라진다.
그 모습을 보다 그만 난간에서 몸이 기우뚱 기울고 말았다.
느리게
세상이 거꾸로 뒤섞이는 것을 보았다.
하늘을 날았다.
머리위에 세상이 발아래 하늘이 있다.
A는 하늘의 틈새로 굴러 떨어졌다.
◇
똑똑.
―――있어요?
그런 사람 없어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난 것에는 죄가 없다.)
거기서 나오라.
당신의 숨을 비틀어 비명조차 묻어 놓은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당신의 울음이 듣고 싶다.
울어라, 차라리
아프다고.
부처도, 예수도 아닌 그저 인간으로 나서 한 세기 못되게 살다가 갈 목숨을
부디 토하라.
◇
우르르쾅, 하고 나는 하늘이 무너질 줄 알았다.
산산이 무너져 내리기를 바랐다.
하지만 여전히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잔잔하여
새 바람이 저 끝에서 불어오고...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죽기를 바랐지.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사실 나는 세상에 없는 거야.
아픈 줄도 몰랐고
내가 사라지는지도 몰랐다.
세상은 그런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눈이 떠지더라.
아침에
희멀건 햇빛에 눈이 아팠고
씨이-발, 길게 욕이 나왔던 아침에.
◇
오웩, 말갛게 내장을 뱉어냈다.
싱싱한 분홍빛, 위액이 번들거려서
징그럽지.
귀엽지.
속이 쓰리지, 아 목구멍이 녹았다.
눈알이 도르르
굴러
떨어지고오오...
오.
◇
아름다운 것을 해부하고 분해하고 해체해서
더는 아름답지 않았을 때
본래의 것이 아니게 된 부속품을 가만히 보면서
왜 가슴이 막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때
봐봐, 결국은...
피 묻은 손으로 조소했을 때
너는 따뜻하고, 보드라워.
좁은 창문 밖에 해가 있고 깃털구름이 있고 가는 바람이 흘렀다.
썩기 시작한 건 부품일까, 나일까.
눈알을 손바닥에 쥐고 웃었다.
진짜는 없구나.
알맹이는 없구나, 우리는 겹겹의 포장지로 이루어져 있어
벗기고 벗기다보면 남는 것은 우리가 아닌 우리의 구성물이 된다.
구정물이 된다.
몸을 웅크리고 갈피없이 숨을 시근거리다가
억지로 드러난 진피를 사랑하기로 했다.
햇빛에 뼈가 반짝 빛났을 때
나는 나를 위해 사랑을 했다.
◇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자.
이렇게 맴맴 돌고, 구렁창에도 닿았다.
새까만 터널을 지났다.
저 끝에 반짝이는 게 있던 거 같아.
내가 말했지.
잠깐 네 얼굴이 빛나고
저기야, 저기.
한참을 걸었는데
우리 다시 제자리로 왔다.
아,
우리가 아닌.
◇
피로로 따끔한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눈꺼풀을 감으면
안락하고 소란스러운 어둠이 찾아들고,
괜찮다 다 괜찮다,
최고의 거짓말과 최악의 소원을 동시에 읊조렸을 때
터져 나온 것이 눈물인지 피눈물인지 도통 모르고,
짠 냄새가 가득차서 숨이 어째 답답해
후욱 하니 공기를 밀어내면
따각따각 시간이 저만치 가고 이만치 오고,
나는 다만 눈을 막은 채 가만히 서있었는데.
◇
이론적으로 세상은 아름답다. 고양이는 유독 물질이 확산되는 상자 안에서도 살아있을 수 있다. 두 그래프가 이상적인 위치에서 정확히 한 점으로 교차한다. 끝내 모든 것은 정지해서 고요 속에 사그라진다고 한다. 그 고통도, 이 통증도 결국은 똑같은 전기 신호에 불과하다. 무한은 아니나 무한에 가까운 공간 속에 있는 나는 먼지 혹은 그보다도 못한 존재인데 그게 상관없는 일이라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텍스트는 말한다. 나랑 초파리는 꽤 닮았다.
그렇다면 이 답답함은 무언가요. 왜 아무것도 아닌 나는 이렇게 괴로운 거고, 답은 왜 하나로 나누어떨어지지 않으며, 근은 구할 수 없는 중에 미지수만이 하나 둘 늘어가나요. 산다는 말은 왜 이렇게 폭력과 한없이 가까운가요.
사고 실험 속에서는 같은 속도로 떨어지던 두 물체가 제각각 다르게 붕괴해서 산산조각이 난다. 아름답다, 아름다워. 눈을 가리고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는데, 저만치 상냥한 바람이 불어왔는데도 숨이 막혀 죽어갔다. 0에 가까운 무게가 무거워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무엇과도 뒤섞이지 못하고 평행선을 이뤄서 결코 도달하지 못할 저 끝에서 비로소 섞이는 양 했다. 나는 초파리와 꽤 닮았다.
◇
왜 사냐건, 왜 사냐건.
그걸 나에게 묻는 저의가 뭐요?
뾰족하게 반응하니 사람 참 멋이 없다며 한소리 들었다.
어찌할 수 있을까.
웃자니 어금니가 시렸고, 울자니 배알이 뒤틀렸다.
왜 사냐건, 왜 사냐건.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지 않은가.
누가 어찌 보고 내가 뭐라 생각하던
아픈 건 싫고 죽는 것도 무서워서
그냥 숨이 쉬어지기에 살았고
이도 언젠가 자연스럽게 끝이 난다는 사실 하나 믿고
비루먹은 내 목숨은 그래도 귀한 것이다
그렇게 믿고.
왜 사냐건
입이 찢어져도, 웃지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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