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

  ◇ 어긋난 아이야, 하늘을 보지 마렴. 그곳은 너무 자유로워 그만 마음을 잃곤 한단다. 아이야, 콘크리트 아래 갇힌 땅을 보렴. 숨 한 점 들지 않는 그곳은 아무것도 없어 안전하단다. 빛 한 점 보지 말고, 바람 소리 하나 듣지 마렴. 조용히, 아주 조용히 숨을 쉬렴. 여린 가슴을 지닌 네가 걱정이다. 산다는 건 깊은 뜻이 있는 게 아니란다. 마음도, 영혼도 그저 멋들어진 시구일 뿐이야. 이곳은 네 콩콩 뛰는 심장도, 팔딱이는 허파도, 언제나 바쁜 머리도, 생생한 혈관도, 그 무엇도 마음껏 소리 지를 수 없는 곳이란다. 아이야, 그 날의 슬픔도 그 때의 아픔도 그 시절의 무서움도 전부 오직 너만 가리키며 비웃는다. 아이야, 아이야. 텅 빈 가슴을 가지렴.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야. 사실 나는 .. 더보기
사랑과 용기가 없어도 버스의 철봉을 꼭 쥔 채 정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삑-, 이번 정류소는-… 누군가 안내방송보다 빠르게 버저를 눌렀다. 힐끔 눈을 들어 어두운 창밖을 보니 정이 내려야하는 곳이다. 정은 가방을 고쳐 메며 뒷문으로 향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걸음걸이는 폭이 좁고 신중해진다. 얼마 후, 덜커덩 소리를 내며 지친 듯 달리던 버스가 멈추고 문을 열어 사람들을 와르르 쏟아냈다. 정은 그 기세에 거의 휩쓸리듯 뱉어져 나온다. 누군가가 정의 어깨를 밀치고 지나갔다. 버스는 금방 저 만치로 떠나버린다. 눅눅한 밤공기를 마시다 폐가 뜨거워서 어제도, 그제도 내쉬었던 한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땀띠가 나려는 뒷목이 따갑다. 정이 무거운 다리를 움직여 걸었다. 말끔하게 포장된 신기할 것 없는 땅바닥을 보며 걸으면 지구가.. 더보기
Separation anxiety Nell의 동명의 노래에서 시작된 글 민우가 막 자신의 방이 있는 층에 다다랐을 때의 일이었다. 한 방의 현관문이 급히 열리며 소란스런 언성이 터져 나왔다. “—못 참아! 이제 끝내!” “제발, 부탁이야! 가지마!” “지긋지긋하다고! 이거 놔!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쩡하니 뱉어져 나온 실랑이 속에는 섬세한 얼굴을 한 남자와 어여쁜 생김새의 한 여자가 있었다. 둘은 어느 동화 삽화에 그려졌을 듯한 미모였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은 영 아니었다. 여자는 분으로 얼굴이 새빨개져서 자신을 끈질기게 붙잡으려드는 남자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가지마라와 놓아 달라는 싸움이 이어지다 기어코 여자는 남자를 떼어놓았다. 매몰차게 남자에게서 벗어난 여자는 신고 온 구두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한 손에 쥔 채 계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