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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뱃] Moriae Encomium

※숲뱃 7대죄악 합작에 '오만'으로 참여했던 글입니다.

※루님과 트위터에서 나누었던 타래를 기반으로 써진 글입니다.

신의 혼례가 있는 날에는 고독하리만치 새하얗던 신전을 경사로움을 알리는 붉은 비단이 장식했다. 제 신의 경사를 축복하기 위해 기특하게 몰려온 신민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숨 한 톨 허투루 쉬지 않아 고요했는데 그 적막을 나풀나풀 흩날리는 붉은 천의 물결이 시각적으로나마 채워주었다. 칼엘의 부름을 기다리면서 브루스는 제 손바닥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세상의 침묵을 들었다. 햇빛마저 미끄러져 나가버리는 피부는 생을 얻지 못한 석고상 같았고 그마저도 얇은 밤하늘과 같은 기다란 베일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씌워져서 브루스의 몸뚱이는 마치 이 세상에서 똑 떨어진 조각으로 보였다. 꼭 외계에서 내려온 그와 같이.

들리지 않는 것들을 애써 들어보고자 귀를 기울이자니 브루스는 제 손목이며, 발목, 목둘레에 있는 신의 문양이 박힌 장신구들과 베일을 누르기 위해 쓴 티아라의 무게만이 유달리 선명해지는 듯하여 애꿎은 손을 털어보면 짤그랑하고 금붙이가 마치 방울처럼, 혹은 사슬처럼 울렸다. 하기에 조금 있으면 그가 기다리지 않아도 브루스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듣게 되는 존재가 되어버릴 테다.

 

“긴장 돼?”

 

이런 날에조차 제 조급증을 버리지 못해 고소하고 있는 브루스의 머리 위로 퍽 다정하게 신랑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폐와 기도를 통하지 않고 세상을 직접 울리며 브루스를 감싸는 음성은 가히 경배할만한 힘을 지는 것이었지만 브루스는 그저 여상하게 눈만 한 번 깜빡였다. 그런 브루스를 근원 없는 바람은 부드럽게 에스코트하듯이 군중이 기다리는 광장으로 이끌어나갔다.

 



 

신이라는 절대자에게 혼례는 너무나도 세속적이고 제도적인 의식이었지만 그럼에도 이런 일들이 치러졌던 이유는 이 세계의 신이 인격을 가져버린 값으로 외로움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일 테다. 신실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신의 반려란 영원이라 이름 붙여진 신의 평생을 걸고 그와 통하여 귀속되는 운명을 지니게 된다. 필멸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의 정보가 신으로부터 공유되고 이윽고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과 마주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일이었다. 신에게야 ‘혼례’라는 이름에 통상적으로 어울리게 경사로운 일로 여겨질만 했지만 결국 인간에게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죽어버리거나 또는 살아서 영원을 감당하거나 둘 중 하나였으므로 입때 신들은 혼례식을 공공연히 치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칼엘은 브루스를 군중 앞에 세우고 그들 앞에서 신무를 추게 하고 있다. 어찌 보면 브루스가 반려로서 잘 견뎌내리라는 강한 확신이자 굳은 믿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다분히 제 판단에 따라 모든 것이 그의 의도에 따라가리라는 오만이기도 했다. 하지만 브루스는 불평하지 않았다. 얇게 가려져 불투명하게 덧씌워진 세상 앞에 서서 양팔을 들어올릴 때도, 칼엘이 이끄는 것에 따라 움직이는 중간에 유독 선명하게 보이는 사람들 속의 얼굴 몇몇을 알아챌 때도, 그런 브루스를 다그치듯 바람이 턱을 들어 올려 저 쨍한 태양이 뜬 하늘을 우러르게 할 때도 브루스는 제 모든 것을 신의 손에 맡겼다. 신이란 응당 오만할 권리를 지닌 존재이기에 숨이 멎을 것 같은 고양감의 끝에 제 모든 감각을 산화할 듯 차오르는 강한 빛이 고통스러웠음에도 브루스는 그저 받아들이기만 했다.

 



 

“브루스랑 단 둘이 조용한 곳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어.”

 

‘남자’가 배시시하며 수줍게 이야기했다. 신이 없는 세상에 대해 말하며 촌스러운 꿈을 베갯머리송사로 재잘대던 이가 지금은 온데간데없는듯 하지만 분명 브루스의 곁에는 그가 있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 무수한 장면, 영겁의 생각들이 속없이 흘러들자 아직 한낱 인간으로 구성된 브루스의 몸에는 신열이 들끓었다. 그렇게 신경을 범람하는 세계의 모든 감각 속에서 피아를 잃고 있다가 기어이 까무룩하니 정신이 끊어질 즈음이면 남자가, 클락이 순박하게 웃으며 브루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끝없는 늪으로 빠지는 중 물가의 지푸라기에라도 매달리듯이 그 잔상을 붙잡으려 팔을 뻗으면 그런 브루스의 손을 되잡는 것은 점점 그와 같은 생김으로 또렷해지고는 있지만 전혀 낯선 신의 얼굴이었다.

 

“이제 나와 같은 것을 보겠구나.”

 

칼엘이 환희에 차서 말하는 모양새가 퍽 그와 닮아는 있었다. 하지만 브루스는 신성을 버리고 세상의 운명을 손에서 놓기를 소망하며 자유를 야망하던 이를 겹쳐보며 이제 정말로 그가 더는 이곳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브루스를 자기로 돌아오게 했다. 브루스는 영원을, 신의 평생을 손에 넣었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이 세계의 신은 외계로부터 깃든다. 칼엘 역시 말 그대로 별과 함께 떨어져내려 이 세계에 현신하게 되었다. 다만 그에게는 이전의 신들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가 인간인 양부모의 품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것이다. 아가페나 숭고한 아름다움이 아닌 보편의 사랑과 애정 속에서 자라며 자아를 형성한 신의 씨앗은 최초로 스스로 형상을 지니게 되었고 정확히 그가 사랑받은 식으로 세상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는 평화를 약속하고 안전을 보장하며 승리를 상징하여 세상이 사랑할 만한 신이 될 자질을 지녔으면서도 그 자신이 없는 세상을 바라게 되었다. 세상이 그의 세상을 한 번 부수기 전까지는 말이다.

클락이 브루스와 동등한 위치에서 세상에 속하고 자꾸만 에너지를 공급해야만 일정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지루한 위업의 일원이 되고자 했을 때, 신으로서가 아닌 클락 켄트로서의 그런 오만은 세계에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때문에 브루스는 그 스스로가 기억하기로 한 번 목숨을 잃었다.

 

“그대로 둬.”

 

브루스가 마지막 의식을 쥐어짜서 클락에게 남긴 유언이었지만 얼마간의 암흑의 끝에 빛이 찾아들며 브루스의 인지는 이어졌고 인간의 아이가 되었어야할 클락은 사라져있었다. 그때 브루스는 신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경스러운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세계의 신이 외계로부터 유래되어왔던 것은 이 닫힌계가 객관화한 존재가 되기 쉬운 만큼 이방인에게 잔인한 곳이라는 뜻일 테다. 신의 혼례라는 것은 신 그들 자신이 만들어낸 의식이라기보다 그런 짐을 외로운 이방인에게 떠밀어버린 세계가 수많은 영원을 거쳐 만든 일종의 면죄부였다. 그것의 의미를 깨달은 이제 막 자신의 이름을 가진 신은 자연의 황금비로 말미암아 주조되었다고 할 법한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와 함께 떨어진 별의 조각을 그의 가슴 깊이에 묻었다. 그 순간 세계는 처음으로 제 고향에서 생겨난 신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그를 잃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와는 다른 것을 봐.”

 

모습을 감추기 전 혼돈이 죽은 신에게, 살아날 클락에게 속삭였다. 감히 운명을 거스르는 말이었지만 어쨌든 신이란 그런 오만이 용서되는 존재이다. 그리고 훗날 고즈넉한 시골의 소년이 자라나 영웅이 되어 깊은 동굴에 은둔한 혼돈을 영영 잠재우면서 세계는 누군가가 꿈꾸던 자유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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