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EU 로빈이 죽은 후의 이야기
먼지 낀 햇살이 관 속에 누운 이의 앳된 얼굴을 창백하게 어루만졌다. 저 평온을 가장하기 위해서 그의 양아버지와 집사는 결코 아물지 않을 피부를 꿰매고, 터진 상처를 덧씌우며, 부러진 뼈들을 모았다. 하얀 국화가 채 마르지 않은 약품의 냄새를 감싸며 내려앉았다. 울음 섞인 애도도, 억울함의 호소도, 분노에 찬 고함도 없이 나이 든 신부가 조곤조곤 읽어 내리는 성경의 구절만이 가는 이를 배웅했다. 흙 한줌의 냄새는 눈물의 짭짤함과 닮았다. 그렇게, 로빈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개일 줄을 모르는 어둔 밤. 사내 대여섯이 허름한 선술집에 모여 피 묻은 돈으로 포커를 치고 있었다. 눅눅한 담배연기로 자욱한 실내에 신선한 공기를 몰고 들어온 것은 그 몸에 축축한 흙의 냄새가 가시지 않은 배트맨이었다. 문의 경첩을 망가뜨리며 등장한 박쥐의 모습에 놀라 가게 안의 몇몇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트맨은 오로지 포커를 치던 남자들이 있는 작은 테이블을 바라보며 주저 없이 걸었다. 금고에서 빼돌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돈 자루가 부주의하게 테이블 위에 있었다.
“뭐, 뭐야—…”
가장 바깥쪽에 있던 사내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배트맨을 올려다보며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의아함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배트맨이 그의 뒤 옷깃을 부여잡아 있는 힘껏 탁자 위에 그의 얼굴을 처박았다. 그 탓에 앞니가 깨지고 이마가 찢어지며 남자는 기절해버렸다. 쾅! 소리와 함께 중심 잃은 사내를 따라 테이블이 쓰러졌다. 술집 바닥에 쏟아진 술과 카드, 퀴퀴한 돈들이 어지럽게 쏟아졌다. 배트맨의 기세에 놀라 주춤하던 일행 중 깡마른 남자 하나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제 뒷주머니에 있던 권총을 꺼내들었다.
“무슨 짓이야!”
남자가 새되게 외쳤다.
“놈은, 어디 있나.”
흔들리는 총구를 지그시 응시하며 배트맨이 기괴한 목소리로 물었다. 짓씹어서 뱉어진 말은 쇠 냄새가 나서 비렸다. 남자는 그런 배트맨을 위협하듯 찰각 하고 권총의 잠금쇠를 풀었다.
“무, 무슨 소리야!”
끝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대꾸하며 남자가 방아쇠에 떨리는 손가락을 걸쳤다. 배트맨의 눈이 가늘어졌다. 남자에게로 배트맨이 손을 뻗는 것과 동시에 탕 하고 요란한 총성이 좁은 가게 안에 울렸다. 악, 꺄악. 온갖 종류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배트맨의 왼쪽어깨를 스친 탄환이 그 뒤편에 있는 가게 벽에 날아가 박혔다. 배트맨은 남자의 손을 주저 없이 잡아 비틀며 주춤주춤 도망을 치던 그의 무리들 쪽으로 집어던져버렸다. 남자의 부러진 손목에서 총을 뺏은 배트맨이 탄창을 분리하고 총신을 망가뜨리며 바닥에 너부러진 무리들 앞으로 보란 듯이 그것을 떨어트렸다. 마른 남자의 뒤통수에 부딪혀 코가 깨진 다른 남자가 쓰러진 채 코피를 훔치고 있었다. 배트맨이 그의 멱살을 잡아 끌어올리며 으르렁, 목울음 같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물었다.
“말해. 놈은, 조커는 어디 있나.”
불법적인 폐수 방류에 의해 문을 닫은 소규모 화학공장 앞으로 전에 보다도 더더욱 거친 주행을 선보이던 배트모빌이 스스럼없이 달려들었다. 대충 지어진 가건물로 돼 있는 공장은 금방 잠긴 문이 종잇장처럼 우그러들었고, 어설프게 둘러둔 사슬 위로 채워진 녹슨 자물쇠도 쉽게 뜯어져나갔다. 문을 들이받은 다음에야 멈춰선 배트모빌에서 구태의연하게 배트맨이 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곧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원색의 화장을 하거나 우스꽝스러운 광대 가면을 쓴 갱들이 배트맨을 에워싸며 총부리를 겨누었다. 이 장소에 도달하기 위해 일고여덟쯤 총상을 입었고, 스물대여섯쯤 자상을 입었으며, 그 수를 셀 수도 없을 정도의 타박상을 치러야했다. 상관없었다. 이번으로, 정말 끝을 볼 생각이었다.
배트맨이 제 뒤로 살금살금 다가오는 덩치 큰 사내를 엎어치기 하며 요란스럽게 저에게 달려드는 광대 하나에게로 내던졌다. 작은 칼을 쥔 인물이 크흐흐 괴상한 웃음을 흘리며 다가왔다. 배트맨은 그의 팔을 돌려 꺾어 잡은 뒤 그 몸으로 쏟아져드는 무리들을 막아냈다. 천장에서 총을 발포하는 놈에게는 그래플 건을 쏘아서 기둥에 매달아버렸다. 망가져버린 공장의 문에서 떨어진 쇠붙이를 들고 달려드는 놈도 있어 배트맨은 그것을 장갑에 달린 날로 흘려보내며 그의 명치를 차 날렸다.
“그만!”
유쾌함이 묻어난 외침이었다. 살이 짓이겨지는 소리와 총성, 고함, 괴성으로 메아리치던 실내가 삽시간에 잦아들었다. 저 어둠 속에서 화려한 색의 코트를 걸치고 녹색 머리를 한 남자가 느릿느릿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 밝지 않은 실내인데도 광대의 하얀 얼굴이 망막에 그려지듯 선명했다. 배트맨은 부여잡고 있던, 이미 기절해버린 놈의 부하를 저 바닥으로 내쳤다.
“모옷된— 녀석들! 아빠의 즐거움을 뺏으면 어쩌겠단 거지?”
보라색 가죽 장갑이 두 번 박수를 치자 새까맣게 배트맨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던 무리가 공장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조용한 공장 안에 뚜벅, 뚜벅, 뚜벅. 발소리가 울렸다. 배트맨은 덤덤하게 조커를 바라보았다. 적당한 거리를 남겨두고 조커가 발을 멈춰 세웠다.
“뱃! 뱃츠! 뱃시!”
양팔을 벌리며 조커가 기껍게 외쳤다.
“왜 이리 늦었어? 립스틱이 말라버렸잖아.”
붉게 칠한 입술을 핥으며 조커가 헤죽헤죽 이야기했다. 배트맨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보았다. 마치 똑똑히 그 얼굴을 기억해두려는 듯. 배트맨은 잠시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리고 그가 걷기 시작했다. 뛰기 시작했다. 퍽! 하고 부츠발이 사람을 걷어 차 날리는 소리가 났다. 하하하하하! 등골을 긁어내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그것과 거의 동시였다.
쓰러진 몸을 굴려 일어나려하는 조커에게로 배트맨은 유틸리티 벨트에서 꺼낸 배트랭을 집어던졌다. 그보다도 아주 조금 전에 조커가 몸을 비튼 덕분에 그것이 얼굴에 박히지는 않았지만 분을 칠해놓은 허연 뺨 한쪽이 베여 빨간 피가 흘렀다. 조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트맨은 다시 묵묵하게 그 모양새를 보며 걸었다.
“보낸 농담이 마음에 들었어? 자기?”
배트맨이 조커의 멱살을 쥐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커가 먼저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에 날이 박힌 카드를 꽂았다. 경동맥은 벗어났지만 아슬아슬한 위치였다. 배트맨은 그것을 피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접근한 그의 옆구리에 주먹을 날렸다. 우득, 어쩌면 늑골이 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뒤에 조커는 배트맨의 명치를 무릎으로 찍어 밀어냈다.
“하하! 히… 내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말이지. 하지만 자기 농담을 존중하는 마음에 되돌려 준거잖아?”
명치를 차이고 밀려난 배트맨이 짧게 숨을 집어 삼키는 사이 조커가 어느새 그에게 다가와 그의 옆구리를 칼 끝 같은 구둣발로 걷어찼다.
“그럼 웃어줘야지. 안 그래?”
조커가 다시 저벅저벅 배트맨에게로 걸어와 다리를 들어올렸다. 배트맨은 달려드는 그의 다리 종아리 근육에 배트랭을 박아 넣었다. 조커의 몸에 밸런스가 무너지자 배트맨이 일어서며 그의 턱을 날려버렸다.
“컥! 흐, 하하하. 배트맨. 나의 공주님. 애초에 네가 문제라고? 네 왕자 역은 이미 정해져 있었잖아?”
“닥쳐.”
땅을 긁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배트맨은 쓰러진 조커에게로 다가가 그의 멱살을 쥐고 주먹으로 그의 뺨을 강타했다.
“네가! 나쁜 거야. 우리 둘의 일에 시끄러운 새를 끌어들인 네가 나쁜 거라고. 히히, 알아? 이 아빠가 얼마나— 열— 이 받았는지?”
“닥쳐!”
퍽, 고깃덩어리를 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하하, 하하하하! 그래, 그래야지. 나의 뱃시. 이제야 내 공주님답네. 어때? 나를 죽일 마음이 들어? 나와 랑데부할 생각이 들어?”
퍼억, 이번에는 반대쪽. 그리고 다시 주먹을 내리꽂으려는 순간 조커가 꺼내든 작은 잭나이프가 배트맨의 팔 근육에 박혔다. 하지만 기어코 배트맨은 조커의 멱살을 놓치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끝을 낼 생각이었다. 이 뒤는 없었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진작 마음을 먹었어야했다. 그 날, 그 때, 그 시각. 자신의 존재야 이미 심연 속에 먹힌 괴물이나 진배없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참았단 말인가. 무엇이 두려워 주저했단 말인가. 그, 아이가.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는데.
“죽는 게, 소원이면.”
배트맨이 조커의 멱살을 움켜 쥔 주먹에 힘을 주며 그와 얼굴을 바짝 가까이했다. 이 와중에 기괴하게 확장된 광대의 동공이 마치 숨 막히는 늪과 같았다.
“죽여주지.”
배트맨이 이를 갈듯 웃으며 크게 주먹을 뒤로 뺐다. 그리고, 이미 피범벅이 된 조커의 얼굴을 내리치려했다. 그 때.
[브루스!]
귀를 감싼 카울의 측면부에서 절박한 외침이 들렸다. 목소리 주인의 평소와는 답지 않은 조급함이 점철된 부름이었다.
“통신기는 껐을 텐데?”
눈을 깜빡이지 않아 핏발이 선 채로 배트맨은 여전히 조커를 노려보며 무기질적으로 말했다.
[이런 일이 있을까, 미리 카울을 조작해두었죠.]
한숨 뒤섞인 어조로 알프레드가 답했다. 이럴 시간이 없었다. 조커를 죽여야 한다. 끝을 내야한다. 배트맨도, 이것으로, 모두.
[그만두십시오.]
“…”
[이제 그만하세요. 더 놈에게 다른 목숨을 쥐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난 그걸 위해 여기 왔어요.”
[웨인 주인님.]
“놈이, 로빈을… 그 아이를 죽였어.”
[…도련님.]
“놈이 그 아이를 죽였다고! 그 아이를! 내—…”
[지금은 당신을 죽이려하고 있어요.]
“난 죽지 않아.”
[죽어가고 있어요. 브루스. 슬픔 속에 당신이, 죽고 있단 말입니다.]
그럼, 나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에요. 치켜든 주먹에 힘을 주며 브루스가 뒷말을 삼켰다. 그 침묵을 알프레드는 기꺼이 읽어냈다.
[조커를 죽이시겠다면, 절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표라면—…”
[웨인 주인님. 집사 일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전 지금 제 목숨을 걸고 말하는 거예요.]
한 5초 정도. 분에 찬 숨소리만이 들리다 그 후 까드득, 서늘하게 어금니를 사리무는 소리가 났다. 알프레드는 통신기 너머에서 둔탁한 타격음을 들었다.
초조하게 도청이나 다른 생중계 소식들을 듣던 알프레드는 경찰이 피떡이 된 조커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것을 확인하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아캄에 이송하기 전 치료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고담 경찰들 몇몇이 뭐라 뭐라 배트맨의 잔악함에 대해 논하고 있었지만 그 부분은 귀에 들이지도 않은 채 무전을 도청하던 라디오를 꺼버렸다. 알프레드와 대화가 끝난 뒤 커다란 타박음 다음으로 와장창 커다란 무언가가 쇠 면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컥, 헉. 하고 조금 먼 위치에서 조커가 숨을 고르는 소리가 났다. 아마도 브루스가 그를 잡아 어디 벽면에라도 집어던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히히, 히 하고 끝 모르는 웃음이 흐르고 광소어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자기, 내가 자길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부우웅. 지친 짐승의 숨소리처럼 침중한 엔진소리가 굴 안으로 흘러들었다. 알프레드는 안경을 고쳐 쓰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서늘한 표정으로 배트모빌 앞에 섰다. 얼마 후 탄약 냄새와 땀 냄새, 피 냄새 등이 고루 범벅이 된 배트맨이 나왔다. 브루스가 거칠게 카울을 벗어내자 그의 목에 박혀있던 조커 카드가 떨어져 나왔다. 배트맨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담담히 서있는 알프레드에게로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태연한 집사의 말을 브루스가 무표정하게 들었다. 침묵이 먹먹하게 동굴을 두드렸다. 그러다 습 하고 깊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브루스가 굳게 주먹을 쥐는 것을 보았다. 알프레드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쾅! 브루스의 주먹이 이미 이리저리 찌그러진 배트모빌의 측면을 으스러뜨렸다.
“다시는.”
식식 숨을 고르던 브루스가 한 번 말을 끊었다. 독기 어린 눈동자가 붉게 충혈 돼서 제 집사를 힐난하듯 쏘아보고 있었다. 알프레드는 여전히 바른 자세로 서있었다.
“다시는, 날, 말리지 마요.”
“네. 다시는 말리지 않겠습니다.”
집사는 깔끔하게 답했다. 어차피 두 번, 세 번 쓸 생각으로 입에 담은 말이 아니었다. 다만, 브루스의 기준을 크게 뒤흔들 사건이 벌어지기에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아직은. 비록 욕심으로는 그 때가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했지만 그래도 만일 그것이 불가피한 일이라면, 적어도 그가 몇 번이고, 몇 번 이라도 생각한 끝에의 일이었으면 했다. 알프레드는 전장의 광기를 알고 있는 남자였다. 영웅이라 불린 이들의 겉껍질이 얼마나 얄팍한가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브루스가 꾹 깨물고 있는 탓에 그의 입술에서 짙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어린 시절부터 채 전부 뱉어내지 못한 감정들이 꽁꽁 그 타래가 엉켜서 그의 심장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알프레드는 잠잠히 그의 도련님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주먹에 꾸욱 힘만 주고 있던 브루스가 동굴 바닥 위로 몸을 낮추었다. 피가 들러붙은 주먹으로 브루스는 단단한 돌바닥을 두드렸다.
“아, 아아아!”
몇 번 땅만을 두드리던 브루스가 비로소, 비로소 비명에 가까운 오열을 토해냈다. 동굴 구석에 박쥐들이 놀라 소란을 부렸다. 땅에 엎드려 울던 브루스는 곧 그 바닥에 제 이마를 찧기 시작했다. 알프레드는 한참 제 발치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다 가늘게 떨리는 커다란 몸을 보며 서서히 그의 표정을 무너뜨렸다. 아아, 아아아!! 브루스는 그 단단한 배트맨의 장갑이 찢어지는데도 개의치 않고 주먹으로 바닥을 쳤다. 울부짖었다. 알프레드가 무릎을 꿇으며 브루스의 앞에 앉았다.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브루스가 울분에 차 몸을 움직일 때면, 비명을 토할 때면 닿은 몸에서부터 그 울림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알프레드에게도 전달되었다.
“잘못, 잘못했어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언어가 되지 않는 외침만을 토해내던 브루스가 간신히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말을 만들었다. 알프레드는 눈을 꾹 감고 그 진동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잘못했어요. 알프레드. 그 아이를 끌어들이지 않을게요. 약속해요. 혼자여도 괜찮으니까…”
브루스의 다 까진 손이 알프레드의 바지자락을 붙잡았다. 마치 유일한 구명줄인 것처럼.
“…그 아이를 돌려주세요.”
알프레드가 팔을 좀 더 벌려 주인 잃은 사과를 읊는 브루스를 감싸 안았다.
이런 일을 대비해 미리 진정 작용과 더불어 수면을 돕는 향을 방안에 피워둔 덕분에 브루스는 죽은 듯이 곤히 잠들었다. 알프레드는 자잘한 상처들로 열이 오른 브루스의 체온을 확인하며 마지막으로 시뻘겋게 찢어지고 까진 그의 손을 치료한 뒤 구급상자를 닫았다. 잠이 든 중에도 인상을 풀 줄 모르는 브루스의 눈가가 발갛게 짓물러있었다. 알프레드가 조심스럽게 그 눈꼬리를 손으로 훑었다.
“제 이기심을, 결코 용서하지 마세요.”
수염이 까끌하게 자라난 브루스의 얼굴은 두말할 것 없이 한참은 장성한 성인남성의 것이었지만 알프레드에게는 언제고 어려보이는, 죄 없는 아이의 얼굴이었다. 처음부터, 처음 브루스가 제 부모님의 장례식 중 어두운 숲을 향해 달려가던 그 때부터 어떻게든 그를 잡아 말렸어야했다. 세상의 어둠을 어느 한 사람이 짊어질 의무 따위란 그 어디에도 명시되어있지 않았고,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물며 이 아이는, 자신이 평생을 아끼고 사랑한 이 아이는…
“나의 브루스.”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잃을 수 없는 저를 용서하지 말아요. 알프레드가 주름이 진 브루스의 미간에 입을 맞추었다. 코끝에 브루스의 얕은 호흡이 닿아 슬프게도 더없이 안도됐다. 상처로 인해 생긴 열로 자신보다 조금은 뜨거운 아이의 이마에 제 이마를 붙였다.
“꿈 없는 밤 되시기를.”
어둠 속에 잠든 이에게 알프레드가 기도하듯 속삭였다.
쓰고 싶었던 것
1. 울부짖는 브루스
2. 조커가 공주님이라고 하는 거
3. 알프레드의 나의 브루스
원작을 생각하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가 쓴 게 캐붕인 것이 바뀌지 않는 건 이 무슨 매력일까...
나의 브루스는 원작에서 나온 대사니까, 영화에서도 나오면 내가 너무나 좋겠다. 나에게 참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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