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트위터에 썼던 썰을 좀 가공해서...
와아, 줄거리 따위 캐붕 따위 무시하니 뻘글이 나오는구나 :Q_
뱃이 일출을 보게 된다면 혼자일 가능성이 제일 높겠지만, 옆에 숲이나 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뱃이 어떤 큰 싸움을 끝낸 날, 뱃이 배트맨이 아닌 브루스 모습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고담시를 웨인 저택의 지붕에서 서서 멀리 바라봤으면 좋겠다. 복장은 맨발에 바지에 셔츠만 걸쳤든, 아니면 상의는 없이 붕대만 두르고 있든. 그런 편한 복장. 지금 생각하니 큰 싸움이 끝났는데 지붕 위에 서있을 수 있다니 도대체 얼마나 꿘!강!한거야 싶은데... 병상에서 일어난 후라고 하자... 뭘까, 그냥 밤을 활보하는 배트맨이지만 그냥 자신이 사랑하는 도시가 말갛게 빛나는 순간을 그 푸른 눈에 그려내듯 바라보고 있는 게 보고 싶어서... 마치, 이 도시를 사랑하는 이유를 새삼 다시 상기하듯.
브루스는 가슴 가득 아침공기를 들이켰다.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아 숨을 삼키기 위해 부풀어 오른 흉부에서 욱씬욱씬 통증이 올라왔지만 그 마저도 안락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이런 끝은 나쁘지 않다. 물론 '끝'이라는 게 배트맨에게는 결코 주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일출의 아름다움을 모른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폐에 한 가득 담은 그 숨을 하-하니 뱉어냈다. 마치, 첫 울음을 토해내는 아기와도 같이. 자색과 청색의 그라데이션을 이루던 하늘은 점점 밝아지며 말갛게 얼굴을 들어내는 태양과 함께 푸르러 갔다. 아주 오랫동안 이 광경을 보지 못했다. 아주 오랫동안 이 광경을 잊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브루스는 과거에 얽매여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단했다. 그리고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경계하며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니, 옳고 그르고 이전에 배트맨에게는 필요한 것이었다. 지금 박쥐임을 자처한 그가 한가롭게 일출을 마주하고 있는 것은 어떤 심경의 변화일까. 이제 나이가 들어 조금은, 설마 싶지만 조금은, 시야가 넓어진 걸까. 브루스는 피식 웃으며 혼자 고개를 흔들었다. 그 세간에 알려진 얼빠진 억만장자의 미남인 '브루스 웨인'이 그 성격인 게 어디 꽁으로 나왔겠는가. 그저 단순한 변덕일거다.
맨발을 얹어놓은 돌 조각의 감촉은 차갑고 거칠었다. 언젠가 이 지붕 위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절박하게 이 돌들을 움켜잡았던 기억이 났다. 브루스는 여전히 고담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아침인사라도 하러 왔나?"
등 뒤에는 자신보다 훨씬 지금의 광경에 잘 어울릴 남자가 사뿐히 공중에 떠있었다. 슈퍼맨, 클락은 하하하고 소리 내어 웃으며 브루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자네와 일출을 보는 날도 다 있네."
클락은 즐겁다는 말투로 브루스에게 말을 걸었다. 싸움이 끝난 직후 한 이틀 정도를 병상에 꼼짝없이 누워있었으니 걱정이 되었든, 상태가 궁금했든 둘 다이든 해서 이곳에 왔지 싶었다. 브루스는 곧 자신의 옆에 있는 푸른 옷에 붉은 망토를 휘날리는 남자에게서 신경을 끄고 다시 일출에 물드는 도시를 보았다.
클락은 몇몇 싱거운 잡담들을 떠올렸지만 처음에 브루스를 바라봤을 때처럼 입을 다물었다. 평소라면 자신에게 부상을 당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렇게 탐탁스러워하지 않을 친구는 오늘따라 클락이 보지 못했던 그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속에 담아뒀던 무언가를 털어내듯 크게 뱉어낸 숨이 흩어진 아침 하늘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맑아오고 있었다. 언제나 이 도시를 보게 될 때는 늘 배트맨이 활동하는 어둑한 밤 시간이었기 때문에 클락은 오늘에야 순순히 배트맨의 도시가 다른 수식어 없이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고 인정할 수 있게 됐다.
아침 해 아래 한 발을 내민 브루스는 미적인 관점에서도 아름다웠지만 무엇보다 클락은 그가 좀 더 견고한 형체가 된 것 같아 기뻤다. 물론 배트맨은 강했다. 포기를 모르고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지금까지 달려왔다는 사실을 클락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강함은 마치 절벽 끝에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바위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하는 단단함처럼 느껴졌었다.
더 이상 클락은 브루스의 '방식'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붙이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클락은 어느 날 그 단단한 배트맨이 부서져 버리진 않을까하는 걱정을 했다. 그 원인이 밖에서 부터든 또는 그 스스로 안에서 부터든. 그리고 그런, 배트맨의 위태로움에 대한 가정에서 떠오른 것은 기이하게도 슈퍼맨의 불안이었다.
그가 없다면, 그가 틀리다면, 과연 자신은 괜찮을까. 자신은 옳을 수 있을까. 클락은 슈퍼맨과 배트맨이 아무리 말씨름을 하고, 때로 좀 과격한 싸움이 오가더라도 결국 세상은 그 둘이 함께 있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마 브루스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해 아래 브루스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별거 아닌 사실이 클락은 즐겁고 또 즐거웠다. 결국 클락은 소리를 내어 다시 웃어버렸다. 브루스가 고개를 돌려 그런 클락을 불퉁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 마저도 햇살에 빛이 났다.
"...출근 안하나?"
퉁명스런 브루스의 말에 클락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지붕위로 빼꼼 한 청년의 머리가 보였다. 슬쩍 브루스가 뒤를 돌아보니 딕이 히 하고 웃어 보이며 여전히 깔끔한 동작으로 공중으로 튀어 오르며 사뿐히 지붕 위에 내려앉았다. 웬만한 담이 없고서야 똑바로 서있는 것도 고작인 위치에서 그가 보인 동작은 여느 체조선수에 버금가는 그런 것이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브루스가 몸소 칭찬한 적 있는 움직임이었다.
"이왕 본 건데 말처럼 인사나 할까요, 좋은 아침이에요."
"그래."
딕이 브루스의 옆으로 다가오는 동안 브루스는 다시 고개를 원래 위치로 돌렸다. 떠오르는 햇볕이 브루스의 조각 같은 얼굴 위에 쏟아졌다. 딕은 조금 전부터 브루스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소리도 똑똑히 들었다. 그리고 지금의 그의 빛이 반사되는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전에 없이 편한 표정이었다.
솔직히 딕은 꽤 놀라고 있었다. 어떤 사건을 겪고 난 후 배트맨은 대게 그 자신의 행보를 되짚으며 괴로워하며 앞으로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느라 항상 기분이 저조했었다. 아님 그럴 기력조차 없는 상태이거나... 하지만 지금 눈앞의 그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있었다. 눈부심에 살짝 눈썹을 찌푸리곤 있지만 그의 얼굴에 어떤 다른 긴장은 보이지 않았다.
딕은 자신의 파트너였던 남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던 백일몽을 떠올렸다. 아니, 딕은 생각을 멈추었다. 딕은 감히 그에게 '변했다'는 말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애당초 이 시간 아래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사물이건 사람이건, 배트맨이건. 중요한 것은 변화가 아니었다. 딕은 바로 이 순간을 즐길 줄도, 아름답다 여길 줄도 아는 낙천적인 청년이었다.
그리고 어찌되었든 온화한 브루스의 얼굴에 저마저도 기분이 즐거워지는 것은 초대 로빈이던 그의 어쩔 수 없는 습관일 것이다. 딕은 씩 웃으며 말했다.
"역시 고담은 아름다워요."
그리고 그에 브루스는 한 박자 느리게,
"그래."
하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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