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뱃합작에서 루님께서 쓰신 Bat's Beatphobia를 감히 이어써본 글입니다.
루님의 Bat's Beatphobia는 울새뱃합작 딕뱃 글파트(https://robinxbat.postype.com/post/3580167)와 루님의 포스타입 포스팅(https://ru-sb.postype.com/post/3757923)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3차 창작물입니다.
※가벼운 성적인 묘사가 있습니다.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던진 딕의 왼쪽 손목에는 은빛 금속이 매어 있다. 단단히 잠겨 풀리지 않는 금속체는 짤그랑 거리는 몇 개의 사슬로 맨살이 드러난 오른 손목에 걸린 거울상의 것에 이어져있다. 덧붙여 오른 손목은 브루스 웨인의 것이다.
"이건 브루스가 자초한 일이니까요."
딕은 그의 얼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꼭 끌어안아 보고 싶어질 표정으로 애교를 담아 이야기하며 수갑이 채워진 제 손목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가뜩이나 모든 소리가 높이높이 울리는 욕실에서 금속이 맞부딪치며 내는 소음은 보다 청량하고 소란스럽다. 브루스는 침실에서부터 이 욕실까지 절박하리만큼 한아름 꽉 하니 끌어안고 온 이불을 잡은 손에 꾸욱 힘을 주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삐죽하니 조금 튀어나온 아랫입술이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 그래서 딕은 그 입술을 기어이 찾아가 쪽 소리 나게 뽀뽀한 다음 야금 하고 한 번 입질을 했다. 브루스의 몸이 한 번 파득 떨렸지만 딕은 크게 개의치 않기로 한다.
"내가 만든 코코아로 훈련하려고 했더니 브루스 어떻게 했어요?"
브루스의 고개가 보다 딕의 시선 반대편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얄밉게도 예쁜 입술이 더욱 앙 다물려서 묵비권 행사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물론 딕이야 브루스가 그러든 말든 아랑곳 않고 자신과 한(브루스는 결코 그런 적이 없다고 할 테지만) 약속을 깨려했던 남자를 몰아붙여간다.
"'몸을 씻고 싶구나.' 하고 말한 다음 어떻게 했어요? 그대로 숨겨놓은 옷 찾아 입고서 웨인 엔터프라이즈로 도망가려고 했었죠?"
"딕."
"아아, 그런 눈으로 봐도 소용없어요. 내 방식으로 하자고 분명 말했었죠? 차도도 있고요. 브루스, 이젠 나랑 눈 마주쳐도 덜 피하잖아요."
"이번에는 진짜로 씻으려고..."
"그러니까 내가 씻겨준다고요."
그리고 딕은 수갑이 채워진 브루스의 손목에 자극이 가지 않도록 그의 오른손을 마주 잡으며 에스코트하듯 브루스를 이미 물이 뜨끈하게 차올라 있던 욕조에 집어넣었다. 딕이 브루스에게서 빼앗아 욕실 한쪽 바닥에 던져 놓은 이불이 형편없이 구겨져서 브루스가 들어가자 넘쳐흐른 물에 젖어 초라한 몰골이 되고 있었지만 딕은 꿋꿋하게 브루스에게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이젠 설치된 카메라가 사라져서 그나마 눈에 담을 수 있는 브루스의 모습을 보지 못할까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으니 알프레드의 노여움 정도는 브루스를 사랑하는 힘으로 이겨낼 수... 이따가 나가는 길에 세탁실에 얌전히 이불을 가져다 놓기로 결심한다.
"브루스한테는 부담될 거 같아서 원래는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지나면 같이 씻으려고 했는데..."
로빈으로, 나이트윙으로 활동하면서 몸에 밀착되는 의복을 벗고 입는 데는 도가 트인 딕은 한손으로 능숙하게 입고 있던 청바지를 벗어 홀랑 던지며 자신도 욕조 안에 몸을 들였다. 제 엉덩이가 완벽에 가까운 형태인 것을 딕 본인도 그간 들었던 풍문으로 알고는 있지만 뭔가 브루스 앞에서 실룩샐룩 하고 있는 건 모양이 빠지는 것 같아 조금 서둘러서 욕조로 들어왔는데 그걸 브루스가 아는지 모르는지 약간은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딕은 꿋꿋하게, 굳세고 멋진 나이트윙답게 마주 잡고 있는 브루스의 손을 이끌어서 그의 손등에, 그리고 수갑이 달랑 거리는 손목에 쪽쪽 입술을 부볐다.
"너무 움직이지 마요. 여기 자국이라도 남으면 내가 많이 속상하니까."
"처음부터 채우지 않으면 되잖니."
피, 하고 혀라도 찰 듯 브루스가 꿍얼거린다. 가지런한 눈매 속에 들어있는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듯한 눈동자가 힐끗 자신을 보고 돌아가지만 그것이 두려움이나 공포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딕에게 삐져서라는 사실을 알고 딕은 몰래 안도를 삼킨다.
심기가 불편한 채로도 얌전히 딕이 매어둔 수갑에 묶인 브루스는 배트맨으로서 그의 슈트와 유틸리티 벨트에 온갖 도구들을 챙기고 있거나, 하다못해 브루스 웨인으로서라도 정장 속에 세넷 정도는 숨겨 놓은 비장의 장비들이 있다면 모를까 그가 태어났을 때와 같이 새빨간 알몸뚱이를 하고서는 그저 몸을 잘 단련했을 뿐인 평범한(얼굴은 기가 막히게 잘난) 성인 남성에 지나지 않다. 물론 브루스가 딕을 기절시킨 다음 딕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아 꺼내서 수갑을 풀고 유유히 빠져나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브루스가 그저 제 입술만 삐쭉빼쭉하는 걸 보면 본인도 딕에게 켕기는 마음이 있어 저어하는 듯했다. 어쩌면 지금 그가 딕에게 많이 미안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고.
"가끔은 이런 것도 꽤 좋지 않아요?"
딕이 빙글빙글 웃으며 브루스의 손목과 손이 이어지는 사이를 장난스레 살짝 깨물었다. 그러니 브루스가 자신의 빈손을 튕겨서 딕의 얼굴에 물방울을 끼얹었다. 딕은 몇 번 깜빡깜빡 눈꺼풀을 여닫아 속눈썹에 엉기는 물을 털어낸 다음 히히 웃으며 브루스의 맨 목덜미에 제 이마를 비볐다. 브루스의 어깨가 살짝 긴장으로 굳는다. 딕은 주저하지 않고 뒤로 손을 뻗어 미리 욕조 위에 작은 선반에 올려놓은 샤워볼을 집어 욕조물에 푹 담근 다음 브루스의 앞에 들어보였다.
"이거 뭔지 알죠?"
물에 씻어 갓 건진 적채 같기도 하고, 좋게 보면 풍성한 자줏빛 꽃 같기도 한 샤워볼을 보며 브루스는 조금 더 얼굴을 흐렸다. 살짝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는 그를 확인하며 딕은 다시 손을 뻗어 브루스가 즐겨 사용하던 프리지아와 복숭아 향이 절묘하게 배합된 바디젤을 샤워볼 위로 펌핑하여 짜냈다. 딕이 한손으로 죔죔을 하듯 손을 쥐었다 피었다하자 선명한 색의 샤워볼에서 달콤하며 산뜻한 향과 함께 하얀 거품이 몽글하니 솟아났다. 물 아래서 딕과 얽혀있던 브루스의 다리가 조용히 바지락거리며 제 공간을 좁히려 하고 있었다. 딕은 주저 없이 그런 브루스의 다리 사이로 몸을 들여 넣으며 자신의 무릎에 브루스의 안쪽허벅지가 부러 닿을 만큼 그와의 간격을 훨씬 좁혔다.
"딕..."
브루스는 조금 자신 없는 표정으로 딕을 보았다. 불안이 밀물마냥 들어오는 브루스에게로 문득 딕이 고집불통인 자신에게 잔뜩 화가 나서 집을 떠나버렸을 때나 제이슨이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세상에서 잠시 사라졌을 때 등등이 흘러온다. 그리고 그때마다 느낀, 마치 자신이 불행을 옮겨 다니는 전염병처럼 느껴졌던 기억마저도 떠올라 브루스는 갑자기 딕과 욕조에 몸을 같이 담그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도 더럽다고 생각 들었다. 하다못해 옷을 입고 있다면, 이불로라도 잘 가리고 있다면 하고 미련스런 생각이 들어 브루스는 저기 욕실 구석에 너부러진 이불을 보았다. 그때 브루스의 가슴에 살포시 부드러운 반구형의 물체가 자극이라기엔 간지러운 감각으로 닿아온다.
"이거 의외로 구하기 어려웠던 거 알아요?"
그리고 뿌듯하게 잡힌 흉근의 모양을 따라 둥글게 둥글게 딕의 손이 원을 그리며 브루스의 상처지고 아름다운 가슴에 흰 거품 자국을 남기기 시작했다. 물기와 거품으로 번들번들 젖어드는 가슴이 밝은 욕실 조명아래서 잘 빚은 조각상마냥 곱게도 빛난다.
"당신 당황할 때, 그리고 조금 토라질 때 왼쪽 눈썹 찡그리면서 입술 깨무는 거 알아요? 꼭 어려운 문제라도 마주한 것처럼요."
거품이 가득한 적채모양의 샤워볼은 마치 어떤 사심도 없다는 양 브루스의 유륜과 유두도 서슴없이 덧그린다.
"처음 샤워볼 주니까 콜리플라워 닮았다면서 그렇게 싫어했잖아요. 그때 생각했죠. 아예 샐러드볼 마냥 채워서 주면 좋겠다고요. 와, 이러니까 나 좀 못된 거 같다. 그렇지만 브루스는 그런 내가 귀엽잖아요."
샤워볼이 지나간 궤적을 따라 딕의 엄지가 마치 실수로 스친 듯 거품에 엉겨 단단하게 돋은 젖꼭지를 긁듯이 잔거품을 쓸며 지났다. 한 번 짓눌린 다음 퉁 하니 붉어지는 돌기가 앙큼하기 그지없었다. 딕은 수갑으로 이어진 손으로 브루스의 손목 혈관을 따라 짚으며 간질였다. 브루스가 움칫하다 딕을 조금 밀어내려고 했지만 딕은 샤워볼로 브루스의 옆구리를 훑으며 허벅지로 내린 다음 그의 몸을 끌어당겨 제게로 바짝 붙였다. 물에 잠긴 커다란 몸이 너무나도 쉽게 딕에게로 끌어당겨진다. 브루스는 한쪽 눈썹을 기울이며 입술을 살짝 깨문다. 그리고 어째선지 바짝 마르는 것 같은 제 입술에 혀를 조금 내어 축여본다. 딕도 따라 목이 말라서 목울대를 울렸다.
"브루스."
유독 딕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서 브루스의 고막을 잘게 흐르는 전기마냥 두드린다. 천진하게 웃고 있던 아이가 어느 순간과 순간마다에서는 갈증에 시달린 수컷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는 걸 브루스는 알고 있다. 제 어린 연인이 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을 안다. 그에 브루스는 후견인으로서의 체면이고 뭐고 어쩔 수 없이 연인으로서 가슴이 뛰었고, 그 당연한 반응이 아직은 왜곡되어 몽글몽글 가슴 안쪽이 부드러워지던 브루스를 다그치는 것이다. 이러고 있어도 괜찮은 거냐고. 이렇게 브루스 혼자만이 멋모르고 부푼 풍선마냥 행복해져 있다가, 또 다시, 그렇게...
"브루스, 그만."
침잠해가던 브루스가 눈을 확 뜨며 제 앞에 들어찬 파란 새의 얼굴을 마주한다.
"'나'를 봐요."
"딕."
"당신 두려움을 보지 말고, 나를 봐요. 내가 이렇게 당신 앞에 있어."
내 어리광 들어줘요. 딕은 금방이라도 브루스의 몸 곳곳을, 지금 척추를 따라 더 아래로 내려가면 닿을 은밀한 그곳까지 제 맨손으로 쓸고 싶었지만 마치 자신의 이성마냥 샤워볼을 꾹 쥐고서 애원하듯 브루스에게 말을 새긴다. 그간 브루스의 공포 완화를 위해, 브루스가 약물로 인해 겪는 일련의 사고흐름의 재정비를 위해 찰싹 달라붙어 자기도 하고, 손으로 얼굴 이곳저곳을 쓰다듬기도 하고, 입도 맞추기도 하고, 목덜미도 몇 번인가 빨고 그랬지만 그래도 섹스까지는 아직 가 본적이 없었다. 그것만큼은, 브루스가 정말 그래도 괜찮다고 그의 입으로 말할 때까지는 하지 않겠노라고 딕은 다짐했고 지켜나가는 중이며 앞으로도 관철할 신념 같은 것이었다. 딕은 이미 그 자신이 파헤치고 들어올 수 있는 곳까지 모두 들어온 셈이었다. 마지막 빗장은 브루스, 그 본인만이 쥐고 있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어 숨이 조금 가빠서 입을 벌리고 싶지만 칠칠치 못하게 밭은 숨을 학학 뱉을 것만 같아 애꿎은 입술을 다시 꾹 깨문다. 지금 두근두근거리는 이 심장의 울림이 행복인지 공포인지는 완전히 나뉘지 않았지만 그건 사실 보다 먼, 브루스가 여덟 살이었던 때부터 그랬던 것도 같다. 차라리 딕이, 공포의 실체를 자주, 많이 접할수록 좋은 거라며 모든 것을 막무가내로 하려한다면 오히려 견디기가 좋았을까. 제 첫 번째 울새는, 언제고 이렇게나 자신에게 다정하고 상냥하다. 고담의 그 어떤 끔직한 것들 속으로도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면서 지금 이 곳, 이 순간, 딕을 앞에 두고 브루스가 용기를 내지 못 한다는 건 분명 합리적인 일은 아닐 테다. 수갑으로 이어진 채 자신의 혈류를 짚어가는 딕의 손을 어설프게 붙잡은 브루스는 조금 떨려오는 다리를 어떻게든 꿋꿋하게 움직여 딕의 허리둘레에 주저주저하며 감쌌다. 한 손은 딕과 맞잡고 있어 어쩔 수 없었지만 남은 빈손을 딕의 목둘레에 두르면 고담 누구나가, 아니 세상사람 누구나가 예쁘다고 할 청년이 그 고운 눈을 반짝인다. 그 브루스 웨인이 마치 처음 키스를 해보는 사람처럼 어색한 움직임으로 꾹 하고 도톰한 살덩이를 대고 떨어졌다.
"아직은... 여기까지."
푹 고개를 숙이며 브루스가 속삭였다. 그런 브루스에게로 딕이 충분히 버칠 정도로 행복해져서는 물을 박차며 달려들어 안겼다. 욕조의 물이 반의반쯤 그 움직임으로 쓸려나갔지만 감정의 밀도에 비하면 얌전한 편이라고, 만약 이 자리에 이 저택 안 그 누구보다도 현명한 집사가 있었다면 그렇게 설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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