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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뱃] 내가 아는 당신

※DCEU 설정입니다. 대충 연하클락, 연상브루스


클락으로서는 선뜻 이해가 안 되는(원리적인 측면보다 근본적인 면에 있어) 장비들을 작업탁자에 죽 늘어놓은 채 쇳조각들을 만지작거리며 헝겊으로 닦고 연마기에 대어 갈기도 하며 브루스 웨인은 제 도구들을 정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 그를 클락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의자에 앉아 구부정하게 몸을 구부려 책상에 기대어 뚱하니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제 이런 광경이 별난 것이 아니 게 된지도 날이 제법 되었다. 클락은 손으로 제 뺨을 받친 채 성의 없이 근처에 놓여있던 신문조각을 대충 뒤적여보다가 픽 하니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을 튕겨 얄팍한 종잇장을 저쯤으로 치워냈다. 곁에 있는 사람이 그러건 말건 브루스는 설치된 돋보기 렌즈에 얼굴을 가져간 채 실린더의 접합부를 이리저리 살펴보고만 있다.

클락은 눈을 삐쭉하니 심통하게 세우고 한창 집중하는 중인건지 살짝 뾰족하게 나온 그의 입술을 노려보았다. 배트맨을 할 때에도 그의 카울이 가리지 않고 있는 하관에 엷게 위치한 살덩이는 클락의 기억 속에는 대개 고집스럽거나 무뚝뚝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고 아주아주 드물게는 수줍은 듯 오물거리는 그것이었다. [다이아몬드도 녹일 것 같은] 클락이 매우 설게 스쳐 지나듯 읽은 신문의 글귀가 뇌리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지금은 그래도 제 나이나 꾸려나가야 할 회사 주가를 생각해 자중하고 있는 거라고 알프레드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마흔 넘은 나이에 싱글을 고집하는 왕년에 제법 놀아본 대기업의 회장이란 아무래도 여러모로 상상의 여지를 자극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가십들이 매스컴이 만들어낸 숱한 신데렐라 망상 같은 거라며 비웃었지만 어쨌든 신데렐라는 그런 꿈을 충분히 현실로 꿀 수 있는 귀족의 영애가 아니었던가. 클락은 새삼 ‘브루스 웨인’이라는 존재를 되짚어보며 도통 자신이 보고 알아온 그와 어울리지 않는 그의 페르소나에 어딘가 언짢은 마음이 들었다. 여기 이 기름내가 밴 손으로 제 연인이 옆에서 굴러다니든 흘겨보든 뭐하든 신경 쓰지 않는 목석같은 벽창호가 그런 로맨틱하고 달아빠진 수식어와 어울린다고는 클락은 도무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얼마쯤 그를 노려보고만 있던 클락은 발을 끌어 바퀴가 달린 의자 째로 움직여 브루스에게 바짝 다가갔다. 클락의 기척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지 브루스는 그런 클락의 움직임에 상관없이 관 안에 나있는 나선을 관찰하며 탁자에 놓인 설계도에 무어라 빠르게 적어나갔다. 클락은 손을 뻗어 브루스의 허리춤에 팔을 두르고 끌어당기어 그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클락."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반사적으로 놓아버리고서 어쩌다가 클락의 허벅지 위에 앉게 된 브루스가 눈썹을 찡그리며 나직이 말했다. 꼭 기다려를 못한 대형견에게 엄하게 말하는 듯한 그의 투에 클락은 더욱 눈매를 사납게 했다. 자신은 이 곳에 오고 같이 밥을 먹은 다음부터 거진 두 시간정도를 방치되어 있는데 그가 자신에게 ‘안 돼’를 말할 처지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키스해 줘."

이유를 설명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숨길 마음도 없는지 심술이 덕지덕지 묻어난 파란 눈동자를 보며 브루스는 잠시 영문을 몰라 눈을 굴렸다. 그러다가 저쯤에 무성의하게 굴러다니는 신문을 보고서 새삼 그가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라는 걸 상기하게 되었다. 저것에는 어떤 의미도 해석도 없다고 말하기에 묻지도 믿지도 않을 청년에게는 별 소용이 없을 듯해서 브루스는 습관대로 밀어내려 클락의 팔뚝과 어깨 위에서 엉거주춤 힘을 싣던 손을 그의 목둘레에 두르며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요구대로 두 입술을 포개었다. 가벼운 입맞춤처럼 살포시 닿았다가 얼마 없어 떨어지니 클락의 눈이 아주 세모꼴이 되어 브루스를 올려다보았다가 그가 다시 다가오자 잠잠히 그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팔에 힘을 주었다.

시작은 접했다 떨어지는 동작만을 반복하다가 조금씩 츄, 츕하고 들으라는 듯 소리를 울리더니 점점 마주 닿는 입술에 압력이 들어가서 클락의 도톰한 입술이 눌리게 되었다. 그간 그와 키스를 몇 번이고 해보았기 때문에 클락은 버릇처럼 입을 벌렸지만 브루스는 입술로 클락의 아랫입술을 가볍게 물고 놓았다 떨어지고, 다시 윗입술을 쪼았다가 떨어지며 태평하게 굴었다. 다분히 자신을 놀리려는 의도가 들어간 것을 눈치 챈 클락은 먼저 제 혀를 브루스의 구강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지만 그걸 멋없이 지켜보고 있던 옅은 눈동자에 설핏 장난기가 서리더니 그가 고개를 기울이며 언제 부드럽게 접했었냐는 듯 깊게 혀를 얽어왔다. 두 촉촉한 살덩이가 맞닿아 미세한 돌기들이 비벼지면서 간지러움이 오소소 클락의 허리춤을 타고 정수리로 올라갔다. 타액이 새 나가지 않기 위해 브루스가 가벼운 음압을 가하면서 나는 물소리가 귀엽게 청력이 좋은 클락의 귀를 두드렸다. 브루스는 자세를 잡는 핑계로 클락의 허벅지를 제 엉덩이로 뭉근히 문지르고 코를 울리며 자신을 잡아채려는 클락의 혀를 희롱하고 이를 세워 입술을 깨물다가 다시 혀뿌리를 간질였다. 브루스의 키스는 능숙하고 또 여유로웠지만 클락은 그런 평정을 무기로 한 가면 뒤로 쿵, 쿵 하고 울려오는 그의 고동 소리 역시도 더없이 생생하게 들었다.

이쯤 하면 클락이 만족했겠거니 싶었는지 브루스가 뒤로 물러나려는 낌새를 보이자 클락은 커다란 몸을 놓치지 않고 더욱 바투 끌어당기며 메타휴먼이 아닌 그로서는 버칠 만큼 브루스의 호흡을 훔쳐갔다. 숨을 담기 위해 브루스가 입을 조금 더 크게 벌릴 때 클락의 혀가 브루스의 입 안으로 넘어가 자꾸 이곳저곳을 핥고 지나자 결국 브루스의 입술에 서로의 타액이 흘러 촉촉하게 젖어가는 것을 알았다. 브루스는 눈썹을 찡그리며 눈꼬리를 떨었지만 그럼에도 브루스 웨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있는지 그런 무자비한 클락의 키스를 말리지 않고 곧이곧대로 다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물어물 뜨인 눈동자가 자신을 볼 때 비로소 브루스가 자신이 아는 그와 가까워져서 클락은 기꺼워졌다. 역시 세상 사람들이 틀렸고 자신이 맞았다는 생각을 하며.

클락의 품에 담긴 브루스가 듬직한 몸을 가늘게 떨며 가슴을 부풀리고서 학학하고 급하게 공기를 갈구하려 들쯤에야 클락이 그와 아주 약간 사이를 벌리자 브루스가 다급하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떨어진 두 입술 사이로 습기를 머금은 따듯한 공기가 오가다 그 형체 없는 기체가 서로를 옭아매기라도 한 것처럼 둘을 한 번 더 가까워지며 서로를 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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