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에 뭔가 종말 떡밥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서 써보는 숲뱃.
느려지는 박동을 듣는 것은 불행히도 낯선 일이 아니었다. 시뻘건 핏물에 젖어든 배트맨을 품에 안은 클락은 그가 으스러져버릴까 손에 마음껏 힘을 주지도 못한 채였다. 그의 호흡이 점차 미약해지고 있었다.
09/08/XX 오후 5시 삼십 몇 분 경. 날짜도, 시간도 확인하지 않았지만 클락은 시한폭탄의 타이머를 보듯 선명하게 숫자의 나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제 몇 분 후 그의 숨이 멎을 것이다. 브루스의 죽음은 어떻게든, 어디서든 똑같았으니까. 그리고 이번 세상 역시도 그와 함께 끝이 날 것이다.
"미안해..."
클락은 상처와 피로 얼룩진 브루스에게 말했다. 한 귀퉁이가 찢어져 나간 카울 밖으로 초점이 부유하는 브루스의 눈동자가 드러나 있었다. 클락은 그 파란 눈을 물기에 어두워진 시야로 들여다보았다. 차마 눈을 깜빡일 시간조차 아까워서 손을 들어 눈을 비빌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다.
"미안해. 이번에도 구하지 못했어."
클락은 울음처럼 말했다.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말 한 마디 뱉기가 이토록 고통스러웠다. 듣기로 뜬금없는 그의 말에도 브루스의 눈동자는 점멸하듯 느리게 깜빡일 뿐이었다. 그 흐릿한 반응에 클락은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제는 눈물이 메마를 법한데. 크립토니안의 신체는 슬픔에 마저 강인한 모양이었다.
왜일까, 셈을 하는 것마저도 포기한 그의 죽음이었다. 그런데도 그 죽음은 생소한 것인 양 언제나 괴로움의 무게를 더해갔다.
아마 브루스는 모를 그의 수많은 생애에서 그가 클락의 연인이 아닌 적은 있었지만 그가 이 특정한 죽음을 피해가는 일은 결코 없었다.
처음, 가장 처음 클락의 앞에서 브루스가 그 생명을 꺼트렸을 때. 그 모습은 아주, 아주 끈질기게 클락의 뇌리에 박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정말로 ‘고독’의 요새가 되어버린 북극에 멀거니 자리 잡은 슈퍼맨의 장소에서, 클락은 장례도 치르지 않은 브루스의 주검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라에서는 보안을 근거로 그의 시신을 자신들에게 양도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한 며칠 더 버티고 있을라치면 무장한 요원들이라도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었다.
시간만이 차가운 바람을 따라 표정 없이 움직였다.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슈퍼맨으로서는 드문 일이었지만 한동안 태양을 보지 않은 탓 인거 같았다. 암전하듯 의식을 잃는 것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슬픔마저 어두운 의식에 녹아 그 경계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클락이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그 자신의 맨 처음으로 돌아와 있었다. 갓난아기가 캔자스 농장에 떨어져 켄트 부부를 기다리던 그 때로. 아기의 또렷하지 못한 사고로도 클락은 자신이 시간을 거슬러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몇 번의 삶을 살았다.
슈퍼맨이 살아야하는 나날에 비해 브루스와 함께한 인생은 너무나 덧없이 짧았다. 그저 조금 더 그와 나란히 있고 싶었다. 조금 더 그와 사랑하고 싶었고, 조금 더 그의 손을 마주 잡고 싶었다. 몇 번, 몇 십 번, 몇 백 번... 삶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은 더더욱 촉박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점점 더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어느 번 때인가는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마음이 어그러지듯 미칠 것만 같아서 모든 것을 슈퍼맨의 통제 아래에 두려고 한 적도 있었다. 경악과 분노에 찬 브루스의 눈동자가 클락의 가슴을 가르듯 날카롭게 바라본 적도 있었다. 그리고 브루스는 클락이 그를 위해 마련한 안전가옥 안에서 독을 마시고 자살했다. 하필 그 때 클락은 브루스의 곁으로 바로 갈 수가 없었다. 클락은 속이 녹아 입가에 피가 흐르는 중인 브루스를 텅 빈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클락의 모습을 보며 브루스는 눈을 감았다.
또 언젠가는 클락이 브루스를 만나지 않기로 작정했던 적도 있었고, 또 한 번은 브루스가 배트맨이 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다짜고짜 너의 죽음을 아노라고 그의 발치에서 엎드려 운적도 있었고, 운명을 막기에 슈퍼맨의 힘은 턱없이 모자란 것 같아 다른 힘을 찾아 나선 적도 있었다. 그 시도들 모두가 결국 클락의 눈앞에서 죽는 브루스로 결말이 났다.
"이 지구는 시공간이 엉망이야."
어느 날인가 와치타워에서 그린랜턴이 말했다. 가벼운 편두통을 앓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할이 가볍게 투덜거렸다. 클락은 그의 말의 원흉이 자신임을 알았다. 하지만 클락은 세간에서 일컬어지는 순박한 시골청년 답지 않게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지구의 시공간은 엉망이었다. 하지만 클락의 손에서 사랑하는 브루스를 기어이 매번 데리고 가버리는 운명은 더더욱 엉망이었다. 그러니까, 빌어먹을. 안될게 뭐란 말인가. 바라는 것은 그저 자연스레 나이든 브루스가 느릿하게 웃으며 자신의 얼굴을 바라봐주는 것뿐이었다.
"클락."
숨이 꺼져가는 그가 자신을 불렀다. 그의 한 쪽 손이 힘없이 클락을 찾듯 허공을 휘저었다. 클락은 그것을 단단히 잡았다.
"클락. 이제 그만..."
맙소사. 이번의 그는 자신에게 작별마저 고하려고 하고 있었다. 클락은 뒷말이 듣고 싶지 않아 피범벅인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피와 짠 눈물이 섞여 사람의 목숨과 같은 입맞춤이었다. 어째서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사람이 이렇게 죽음과 가까운지 클락은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의 조금 서늘한 손을 맞잡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온기가 그에게로 옮겨 붙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탕―
클락의 심장이, 타들어갈 듯 아팠다. 심리적인 고통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물리적인 고통이었다. 클락은 놀라 순간 반사적으로 브루스에게서 떨어졌다.
"...미안."
브루스가 한 쪽 손에 힘없이 총을 잡고 있는 채로 말했다.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총을 그가 클락에게 겨누고, 클락의 가슴에 구멍을 뚫었다. 탄환으로 사용된 크립토나이트의 가루와 화약이 뒤섞여 클락의 숨을 죄고 있었다.
탄환을 밀어내기 위한 폭발이 브루스의 손과 그 자신의 가슴께에도 그가 걸친 유니폼을 망가뜨리고 피부에 심한 화상자국을 만들었다. 가뜩이나 성치 못한 그의 몸이 이제는 그의 살인의 흔적이 더해져 멍들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클락이 붙잡고 있는 손은 지금 브루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같이 맞잡은 채였다.
클락이 웃었다.
"그래, 내가 왜 이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클락의 가슴에서 흘러내린 따뜻한 피가 천천히 숨을 거두어가던 브루스의 품 안으로 떨어졌다. 브루스. 클락의 마지막 숨이 단 한사람을 가리켰다. 이제 곧 오후 5시 40분. 브루스가 죽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브루스는 1분 더 기다렸다. 클락의 몸이 차가워지는 그 1분을 홀로 얕은 숨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클락이 눈을 감았다.
급하게 식어버린 클락의 몸을 브루스가 감싸 안았다.
"쉿. 클락. 다... 괜찮아."
그리고 세상은 암전한다.
지평선은 아직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말갛게 오늘의 해가 떠오를 것이다.
“내가 우주에서 지구의 상황을 봐달라지 않았던가?”
새까만 밤을 배경으로 조근조근하지만 신랄한 목소리가 이야기 했다. 그 목소리에 다른 목소리는 대수롭지 않다 듯 말했다.
“야, 이 행성은 내 고향집이거든? 내 집이 제대로 복구 됐는지 어땠는지 내가 직접 보겠다는데 니가 왜 나가라 마라야.”
“언제부터 할 조던이 지구를 전세 냈지?”
“이래서 꽉 막힌 부자 놈은 안돼요. 내가 서 있으면 거기가 내 집이야. 알겠냐?”
“그거 참 빈곤한 발상이군.”
그린랜턴과의 말씨름은 두통을 유발할 뿐이라는 과거의 경험을 되새기며 브루스는 지친 듯 토를 달았다. 그 와중에도 브루스의 눈은 여전히 구름으로 다소 우중충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브루스는 별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뒤 어린 그를 실은 비행선이 이 지구에 도착할 것이다. 답지 않게 초조한 기색을 띠는 브루스의 옆얼굴을 보며 할이 혼자 한숨을 삼켰다.
“야.”
할의 부름에도 브루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다만 그의 인상이 보다 매섭게 변했다는 점에서 할은 브루스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음을 알았다.
“야, 진짜 이렇게 끝이야?”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라 했던 건 누구지?”
“나.”
“지금 이게 그 답이다.”
무심하게 답하는 브루스의 말에 할은 울컥한 듯 눈썹을 찌푸렸다. 자신의 존재가 경각에 달렸음에도 브루스는 마치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했다. 그저 클락 켄트가 올 밤하늘만을 바라보면서.
그린랜턴이 되고 그의 직장이 우주가 되면서 할은 여러 가지 세상일들을 목도했다. 그리고 이번 이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런 일들에 비하자면 있을 수 없는 일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거기의 주축에 자신의 동료 둘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복잡해졌다. 그것도 둘 사이의 엄청나게 사적인 이유를 바탕으로. ‘생각하기보다 행동으로’를 모토로 삼는 할에게 있어 이 일은 함부로 개입하기에도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방관하기에도 그런 골치 아픈 일이었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너희 둘이 어떻게 해결을 보는 게 어때?”
결국 할은 덜컥 당사자에게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물론 성격 깐깐한 배트맨에게 이야기를 하기 전 할은 슈퍼맨의 앞에서 이 일에 대한 운을 뗐었다. 하지만 웬걸. 그 빅 블루는 너무나도 태연한 표정으로 마치, ‘아, 그래?’라고 하듯 할의 이야기를 흘려버렸다.
“무슨 말이지?”
“시치미 떼지 마. 니가 모를 리 없잖아. 그 ‘배트맨’이 말이야.”
할의 말에 배트맨은 꽤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매서운 눈매로 그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이 무섭기보다도 어쩐지 갈피를 잡지 못해 묵혀두었던 문제를 갑자기 등쌀에 밀리듯 마주하게 된 사람처럼 위태로워보였다. 그리고 브루스는 끝내 아무 말 없이 등을 휙 돌려 성큼성큼 와치타워 밖으로 걸어 나가 버렸다.
그렇게 일이 유야무야 되는가 싶던 차. 세상이 잠시 눈을 감기 일주일 전, 갑자기 덜컥 브루스가 할에게 말했다. 부탁이 있다고.
“아!”
브루스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휘이이 하고 하늘에서부터 질량 있는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할은 상념에서 깨어나 브루스가 바라보고 있는 하늘을 보았다.
저 하늘에서 별똥별 하나가 내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옥수수 밭을 향해 달려갈 것만 같은 브루스의 어깨를 붙잡으며 할은 두세 발 정도 뒤로 물러섰다. 이제 곧 긴 꼬리를 그리며 희미한 낙하 소리를 내던 점은 점점 커다란 굉음과 함께 저 밭 한가운데에 크레이터를 낼 것이다. 브루스는 순순히 할의 손길에 따라 몸을 뒤로 뺐지만 시선은 고집스레 아기가 탔을 우주선에 고정한 채였다. 할의 손에 잡힌 브루스의 어깨가 조금 뻣뻣했다. 그리고
콰앙!
눈부신 빛과 시끄러운 충돌음. 그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할은 흐릿하게 클락을 부르는 브루스의 외침을 들은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안가 브루스는 할의 손에서 빠져나와 아기가 떨어진 곳을 향해 달려 나갔다. 할은 그것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브루스는 어떻게 하면 세상이 완전히 새로 시작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지구는 아주 오래되었고 동시에 젊었다. 클락이 끊임없이 시간을 뒤로 돌리면서 이 지구의 시간은 클락과 브루스를 양 끝의 점으로 고정되어버린 채 비정상적인 확장만을 계속했다. 브루스는 몇 번이고 반복되는 이야기의 끝을 알았고, 그 속에서 클락의 울부짖음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브루스는 자신의 숨이 몇 번이나 다시 돌아왔는지 세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저 아직 한창 젊은 클락의 얼굴에서 그의 눈동자만이 심해의 빛으로 어둡게 침잠하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어떤 때는 브루스가 클락을 만나지 않으려 했던 적도 있었고, 어떤 때는 클락이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길 바라기도 했었다. 그에게 진심으로 화를 내보기도 했고, 그가 경멸할 법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늘 끝은 같았다. 자신의 상실 앞에 길을 잃은 클락. 그것이 브루스의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의 마지막이기도 했다.
클락은 너무 오래 이 기형적인 삶을 반복한 끝에 선택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그의 모습은 배트맨이던 브루스가 너무나도 잘 이해하는 유의 강박증이었다. 그리고 브루스는 자신에게 똑바른 선을 그리며 달려오는 클락을 진심으로 막을 수 없었다. 왜 그 많은 삶 중에서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은 클락과 좀 더 오래 있을 수 없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제는 브루스마저도 이 엉킨 시공간 위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망설여 왔던 결론에 다다랐다. 세상의 마지막인 자신보다 세상의 시작인 그가 먼저 숨이 멎는다면. 그렇다면. 직선을 이루는 양 끝 점에서 한 점이 사라지면 직선은 점이되고, 그 점은 면이 되고, 공간이 된다. 그리고 그 빈속을 이 우주는 다시 매워갈 것이다. 모든 것은 처음으로 돌아간다. 본래 그가 흘러가야 했을 방향으로. 그 시작도 끝도 무엇 하나 임의로 정해진 것 없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세상은 한번 숨을 멈추었다. 그리고 딸깍. 하고 스위치를 올리듯 빛이 들어왔다. 브루스에게 그 빛은 어린 칼엘을 실은 비행선이 하늘 위에 그리는 기나긴 궤적이었다. 별똥별을 보면 소원을 빌라는 오래된 통속 하나가 떠올랐다. 부디, 이번 그의 삶은 온전하기를. ‘자신’의 클락은 이제 브루스 웨인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배트맨은 이미 되어버린 일을 바꿀 수는 없지만 앞으로 있을 일을 바꿀 수는 있을 터였다.
클락의 가슴에 발포했을 때 입은 가슴의 상처가 주홍글씨처럼 욱씬 하고 아려왔다. 이 통증이 살아있는 한 브루스는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수 있다. 클락이 브루스를 살리기 위해 몇 번이고 시간을 되돌린 결과, 그 시공간이 지닌 에너지가 브루스의 마지막을 보살펴주고 있었다. 지금 이 목숨은 좀 더 브루스와 함께하고 싶어 하던 클락이 남긴 선물인 셈이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곧 켄트 부부가 온다. 브루스는 마음이 급한 탓인가 멀리서부터 켄트부부가 몰고 오는 자동차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브루스는 사박사박 풀을 밟으며 아직 대기 중을 긁고 지나온 그을음 냄새가 가시지 않은 크레이터로 다가갔다. 이형의 우주선이 있었다. 브루스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았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것은 뜨거워보였지만 실제로 손을 가까이해보면 서늘한 기운이 묻어났다. 브루스의 접근을 인지했는지 우주선이 열렸다.
안에는 아기가 눈에 익은 망토를 이불삼아 아직 잠들어 있었다. 동그란 아기의 얼굴이 너무나도 평온해보였다. 브루스는 온기를 확인하듯 머뭇머뭇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통에 손바닥을 가져다댔다.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도 아이의 따뜻한 온도가 전해져왔다. 그에 브루스는 좀 더 용기를 내서 가만히 손가락으로 아이의 통통한 뺨을 문질러 보았다. 아이가 자신의 단잠에 끼어든 무언가를 잡으려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브루스는 그 손이 자신을 잡기 전에 서둘러 손을 거두었다.
이제, 그의 삶이 시작된다. 직선의 세상이 아닌, 온전한 그의 삶이.
"안녕, 클락."
그리고, 안녕.
어두운 밤길 저쯤에서 작게 불을 밝히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보였다. 브루스는 다시 온 길을 되돌아 클락으로부터 멀어져갔다. 깊어지는 어둠 뒤로, 얼핏 남녀 한 쌍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기는 그의 엄마를 보고 눈을 반짝 뜰 것이다.
“...됐어?”
다시 우거진 나무그늘 속으로 돌아온 브루스에게 할이 물었다. 브루스는 아무렇지 않다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중 한 두 번 정도 브루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끝이군.”
“내가 사라진다면 완전히 끝이다.”
할은 미련을 떨치듯 말을 털어내는 브루스를 멀뚱히 바라봤다. 그 시선에 브루스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일하러 안가나?”
“아, 거 참. 이래라 저래라 말 많네.”
할은 귀찮은 듯 손사래를 쳐보였다.
“곧 사라질 허상을 지켜볼 여유가 있다면 우주는 꽤나 평화롭나 보군.”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보인 브루스는 짙은 어둠이 깔린 곳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이 아직 잠들어있는 어둠 속에 녹아 없어지고 있었다. 그에 할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럴 땐 고맙다고 하는 거라고!”
대답은 없었다. 다만 흐릿한 웃음소리를 바람결에 들었던 것 같았다.
“...또 봐.”
할이 곧 그 자신도 잊어버릴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할은 자신의 역할이 끝났음을 알았다. 브루스의 말대로 직선 세계를 이루던 클락과 브루스가 사라졌으니, 이 지구는 이제 다시 원래 그가 가야할 새로운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할은 우주로 날아올랐다. 반지로 만든 임의의 시간의 장이 버틸 수 있는 건 이 정도 까지였다. 이 시간대의 기억은 곧 말소된다. 그리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의 첫 해가 아직은 숨을 죽인 채 지평선 아래 있다.
캐붕 맛있쪄!! 내 멋대로 세계관도 맛있쪄!!;;;;
원래 할은 이 이야기에서 딱 한문장 이야기하고 마는 걸로 생각을 했었는데;;;
야아아아아 한문장이라니 들러리도 아니고 그게 뭐냐아아아아 판 벌려라아아아아.... 이래서 이렇게 되었는데...
결과는 미미했다.OTL
그리고 이 이야기 뒤로 리런치가 찾아온다거나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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