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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뱃] 다크나이트를 위한 머핀 (1/4) “먹으면 행복해져요!” 어둑한 골목에서 아이가 밝게 말했다. 건물의 그림자 속에서 가늘게 눈을 뜨고 있는 배트맨에게로 아이는 주저 없이 손을 뻗었다. 그 손에는 아이의 주먹보다 조금 더 큰 머핀이 들려있었다. 배트맨은 아무 말 없이 아이의 손끝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여느 때처럼 패트롤을 돌던 중, 브루스는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저가의 주택단지 골목 벽에 노란빛이 떠오른 것을 보았다. 그 작고 동그란 빛 한가운데에는 매직으로 칠해 중간 중간 빛이 스미어 나오는 박쥐 모양이 들어 있었다. 요즘에 와서는 이런 형태의 배트시그널을 본 적이 없었던 터라 그리운 느낌마저 들었다. 브루스는 그 소박한 신호를 따라 이동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 불빛의 끝에서 만난 것이 바로 지금 눈앞에 서있는 아이였다... 더보기
[숲뱃(할?)] 세상의 끝 9월 8일에 뭔가 종말 떡밥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서 써보는 숲뱃. 느려지는 박동을 듣는 것은 불행히도 낯선 일이 아니었다. 시뻘건 핏물에 젖어든 배트맨을 품에 안은 클락은 그가 으스러져버릴까 손에 마음껏 힘을 주지도 못한 채였다. 그의 호흡이 점차 미약해지고 있었다. 09/08/XX 오후 5시 삼십 몇 분 경. 날짜도, 시간도 확인하지 않았지만 클락은 시한폭탄의 타이머를 보듯 선명하게 숫자의 나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제 몇 분 후 그의 숨이 멎을 것이다. 브루스의 죽음은 어떻게든, 어디서든 똑같았으니까. 그리고 이번 세상 역시도 그와 함께 끝이 날 것이다. "미안해..." 클락은 상처와 피로 얼룩진 브루스에게 말했다. 한 귀퉁이가 찢어져 나간 카울 밖으로 초점이 부유하는 브루스의 눈동자가 드러나 있.. 더보기
8/29 숲뱃전력 '달밤' 달이 휘영청 하니 떠오른 밤이다. 굵은 달빛이 꼭 진주알처럼 도시로 떨어졌다. 그러나 빼곡히 들어선 높다란 건물들 탓에 환한 달빛은 오히려 도시 사이사이에 깊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고담의 밤하늘에 또 하나의 달이 다급한 외침처럼 떠오르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일 오전부터 있을 고담과 메트로폴리스 간의 기술 컨벤션 취재를 위해 데일리 플래닛의 기자 클락 켄트는 고담을 찾아왔다. 그가 머물기로 한 숙소에서 키를 받고 방 안에 들어섰을 무렵 하늘에는 배트시그널이 떠올라 있었다. 클락은 열리지 않는 유리창 너머로 고담 시 최고의, 혹은 최악의 풍물을 목도한 셈이었다. 얼마 없는 짐을 침대 옆에 갈무리 해두고 클락은 창가에 있는 낮은 일인용 소파에 앉았다. 딱딱한지 폭신한지 애매한 시트는 어딘가 몸에 맞.. 더보기
[숲뱃] 황혼 비욘드숲뱃... 원작의 흐름과는 (언제나 그렇듯) 전혀, 눈꼽만큼도 관련이 없는 이야기. “―루스, 브루스.” 남자의 목소리에 브루스는 가물가물 눈을 떴다. 뜬 눈 사이로 낮게 뜬 주황색 햇볕이 스며들어 잠시 미간을 좁혔다. 간신히 눈이 햇빛에 적응한 후에야 브루스는 눈을 똑바로 뜰 수 있었다. 그런 브루스의 얼굴을 그를 안아 들고 있는 남자가 따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그나마 펴졌던 이마의 주름이 다시 잡히고 말았다. 태양의 높이로 보아 지금에서 다소 얼마 전, 갑자기 저택에 남자가 찾아왔다. 젊었을 적에도 남자가 불쑥 브루스의 영역에 고개를 들이미는 일이 없지는 않았지만, 다짜고짜 함께 갈 곳이 생겼다며 브루스를 안아 날아갈 채비를 하는 건 꽤나 드문 일이었다. 그런 일이 생기기전에 브루스가 어.. 더보기
[숲뱃] 꽃다발 전화가 울려 바라보니 화면에 좀처럼 보기 드문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클락은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이면서도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 이름을 구성하는 알파벳에 반사적으로 가슴이 뛰었다. "무슨 일이야?" "전시회 오겠나?" 앞뒤 미사여구 없이 본론을 꺼내드는 서늘한 목소리에 클락은 소리 없이 웃으며 "전시회?"하고 되물었다. "히어로를 주제로 열린다는군. 웨인 엔터프라이즈에서도 후원하기로 했지." "꽤나 건설적인 주제네?" 배트맨을 통해 고담을 보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인 클락은 으레 그 도시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며 조금 놀랍다는 듯 얘기했다. "정의의 도시, 사랑의 도시잖나." "우아..." 태연하다 못해 능청스런 브루스의 말을 듣고 클락은 일부러 얼굴을 찌푸리며 야유했다. 휴대전화 너머로는 상대가 보이지 .. 더보기
8/15 숲뱃전력 ‘키스의 의미 : 손바닥-간원 귀-유감’ 백악관에서 렉스 루터의 모진 명줄이 끊어진 후로 세상은 나날이 조용한 곳이 되었다. 그저 한 번의 선택이었다. 그 한 번의 선택이 이토록 멀고 먼 현재를 이끌었다. 이 오늘을 손에 넣지 못해 과거의 자신들은 그토록 번민하고 소중한 이들을 잃었어야 했는가를 생각하면, 그 선택은 너무나도 간단해서 허탈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브루스는 습관처럼 커다란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고담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건들을 비추는 화면에는 별 먹구름 없이 청량한 푸른빛만이 가득했다. 브루스는 그것을 무심하게 지켜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아니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욱 동굴 안은 고요했다. 말하자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저스티스 리그가 로드로 그 이름을 바꾸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세상을 위해, 그 평화의 기반을 다지기 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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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뱃] 입맞춤, 끝과 시작 그러고보니 어째 난 글을 쓸 때마다 뽀뽀로 끝을 내는구나 싶어서 떠오른 숲뱃. 원작이 기어이 이 둘을 어린시절에 안면있는 사이로 만든 지구가 있으니 나는 그 떡밥을 물기로 했다. 마지막은 언제나 입맞춤이었다. 꽤 오래된 기억을 되짚어 보면 거기에는 따뜻하게 데운 우유 냄새가 묻어나는 입맞춤이 있었다. 소년과 소년이 헤어지던 날 아침에, 잔뜩 아쉬운 얼굴로 소년은 소년의 창백한 뺨에 입을 맞추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소년의 곁에는 늘 집사가 함께 있었지만 그런 식의 남으로부터 받는 애정 어린 제스처는 오랜만이라 소년은 잠시 코끝이 징 해왔다. 하지만 소년은 새침한 얼굴로 손만 팔랑 흔들 뿐이었다. 둘은 그 후로 아주 오랫동안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드물게 짤막한 안부 전화를 날리거나, 더 더 .. 더보기
[숲뱃] 피서 브루스는 침실의 커다란 창문의 커튼 사이로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태양을 찡그린 눈으로 노려보았다. 지금은 저 하얀 불덩어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속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브루스는 창문을 등진 채 침대 위에서 반라의 몸을 웅크렸다. 벌써 며칠째 목을 죄는 듯한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뉴스와 신문에서는 사람들에게 지나친 선탠이 피부 화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가급적 야외활동을 자제할 것을 권유했다. 또 상대적으로 전력 설비가 낙후된 지구나 빈민가 쪽에서는 정전이나 일사병으로 인한 피해가 빈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비록 배트맨의 활동은 해가 간신히 숨을 죽인 밤을 무대로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잘 달구어진 도시가 뿜어내는 열기란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정없.. 더보기
[숲뱃] Contingency plan 처음 제목 생각해냈을 땐 오호, 말 된다 이랬는데 곱씹어보니 뭔가 미묘?;;; 핏물 속에 떨어지는 진주. 추락하는 자신. 스러진 다크나이트와 그가 남긴 짙은 그림자. 뻔한 환상이었다. 브루스는 이를 악물고, 악령같이 번들거리는 눈을 한 스케어크로우의 안면을 사납게 가격했다. 일은 언제나 그렇듯 놈의 가스에 당한 피해자들은 해독제와 충분한 수면을 처방받고, 그리고 놈은 배트맨의 공포에 시달리며 아캄 수용소의 독방에서 기나긴 밤을 선고받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콰광. 굉음과 함께 거대한 트럭이 수직으로 도로 한구석에 내리꽂혔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조각들이 시커먼 먼지를 일으키며 사방을 어지럽혔다. 그리고 그 사이로 붉은 망토가 홀연히 휘날렸다. 불타오를 듯 뜨거워졌던 엔진은 슈퍼맨의 숨으로 얼어붙은 지 .. 더보기